[천자칼럼] 괴담 퇴치용 시식회

입력 2023-06-26 18:10
수정 2023-06-27 00:13
‘광우병 파동’이 한창이던 2008년 7월 서울 화곡동의 한 음식점에서 미국산 소고기 시식회가 열렸다. 손경식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과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 의료인이 대거 참석했다. 병원협회, 개원의협회 등 주요 의료단체장들이 시식을 통해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줬다. 전날에는 김형오 국회의장과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시식회를 열었다.

의료인들이 왜 시식 행사에 나섰을까. 광우병 위험이 터무니없이 과장됐음을 아무리 과학적 근거로 설명해도 ‘뇌송송 구멍탁’류의 괴담이 수그러들지 않아서였다. 그해 4월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 타결 이후 야권은 반미 감정을 자극해 여론을 선동했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위험 조작 방송, 사회단체와 종교인, 일부 전문가까지 가세해 국민의 먹거리 불안을 최고조로 몰아갔다. 한 번 불붙은 괴담은 그 어떤 과학적 설명으로도 끄기가 어렵다. 선동이 언제나 그렇듯이, 근거 없는 괴담은 짧고 과학적 해명은 길다. 오죽 답답했으면 시식이라는 원초적 방법을 택했을까.

괴담 퇴치용 시식회가 15년 만에 재연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회와 탕으로 식사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원내 지도부는 이날 서울 가락수산시장 내 횟집에서 회 등을 먹으며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윤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은 수산업 종사자, 횟집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릴레이 식사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회 상임위별 ‘횟집 회식’도 추진한다고 한다.

광우병과 원전 오염수. 전혀 다른 소재인데도 괴담 퇴치 시식회가 열린 과정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식품 안전이라는 민감한 이슈, 반미 감정(광우병)과 반일 감정(오염수) 편승, 의료인·원자력공학자 등 전문가 의견 무시, 좌파단체까지 가세한 장외집회와 여론몰이까지…. 여당은 아무 문제 없다고 수산물을 시식하고, 야당은 위험하다며 단식을 하고 있다. 정치가 과학을 밀어내서 만든 ‘웃픈’ 현실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