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은 기업이 제공하는 복지일까, 아니면 근로의 대가인 임금일까. 성과급을 직원의 퇴직금을 계산할 때 쓰이는 ‘평균 임금’에 포함시켜도 될지를 두고 논란이 이는 가운데, 성과급을 퇴직금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는 하급심 판결이 나왔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대기업이 이 쟁점을 두고 소송에 휘말려 대법원까지 가게 된 가운데, 금융권 주요 기업들에까지 소송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롯데카드도 성과급 소송…1심 뒤집은 법원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롯데카드 퇴직근로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2002년 12월에 입사해 2020년 7월 퇴사했다. 롯데카드는 재직 중인 직원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성과급을 지급해 오고 있었다. A씨는 퇴직 직전에 지급받은 성과급 163만원을 퇴직금 계산할 때 포함되지 않았다며, 이를 포함해 퇴직금을 다시 계산하고 부족한 차액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퇴직금은 퇴직 직전 3개월간 받은 ‘평균 임금’을 바탕으로 산정된다.
결국 성과급이 '평균 임금'에 해당하는 지가 쟁점이 됐다. 판례에 따르면 '평균 임금'에 해당하려면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회사에 지급 의무가 있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근로자 승소 판단을 낸 1심을 뒤집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성과급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닌 롯데카드의 최대 주주가 지급 여부와 지급률을 결정한다”며 “근로자 개인의 업무 실적이나 근로 제공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임금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롯데그룹의 성과급은 그룹을 총괄하는 롯데지주가 각 계열사의 매출액·경영성과 등을 고려해 지급 규모와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방식도 이 같은 법원의 판단 근거가 됐다.
특히 2004년과 2013년에는 당기 순이익이 상당히 컸음에도 성과급 지급되지 않은 점, 성과급 지급률 편차가 매년 큰 점을 들어 “계속적, 정기적으로 지급된 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 성과급 지급 근거가 없고 근로계약서나 연봉계약서에도 관련 내용이 없으므로 회사에 지급 의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률전문가들은 "해당 쟁점과 관련해 이번 롯데카드 사건처럼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린 사건이 적지 않다"며 "법원도 정확하게 법리 정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수백퍼센트' 성과급 주는 대기업엔 '치명적'현재 계류 중인 타기업의 대법원판결에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올 경우, 기본급 대신 성과급의 비중을 늘리고 있는 기업들에는 막대한 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성과급을 수백퍼센트씩 주는 기업이라면 퇴직금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추가 투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퇴직 직전 받은 900만원의 성과급을 평균임금에 포함한다면, 평균임금이 약 300만원가량 오르는 효과가 발생한다. 10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경우 퇴직금 3000만원 이상의 돈이 좌지우지되는 셈이다.
이 쟁점은 다른 방향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최근엔 평균임금이 아니라 아예 '임금'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2021년 LG화학을 퇴직 근로자 25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4억원 규모의 임금 청구 소송에 대한 법원 판단이 있었다.
노사가 ‘2020년 경영성과급’ 400%를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한 것에 대해, 2021년 퇴직한 근로자들이 “2020년까지 일했기 때문에 우리도 성과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건을 맡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임금은 근로의 대가인데, 경영성과급은 회사에 수익이 발생했을 때만 지급한다”며 “수익 발생에 경영진의 경영 판단, 동종업계 동향 등 근로 제공과 무관한 요인들도 영향을 미치므로 근로 제공과 직접·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사건은 근로자들의 항소 포기로 확정됐다.
결국 대법원에서 이 쟁점과 관련해 정리될 때까지 기업들이 겪는 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노동계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는 유력한 사건으로 꼽는 견해도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