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맛과 지옥의 냄새를 가졌다는 열대과일, 두리안을 접해 본 적 있으신가요? 싱가포르 등 주 소비국에선 두리안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금지될 정도로 냄새가 지독합니다. 하지만 달콤하고 크림처럼 부드러운 맛으로 동남아시아 등지서 매니아층이 두터운 과일입니다. 비타민과 당분 함유량이 높아 피로 회복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얼리지 않은 생과 기준 1통에 5~6만원대에 살 수 있습니다.
이 두리안이 올해 동남아시아에서 ‘역대 최저가’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단돈 1달러에도 살 수 있는 흔한 과일이 됐다지요. 주산국인 말레이시아에서 농가들이 앞다퉈 두리안 농사에 뛰어들면서 생산량이 급증한 한편, 역대급 더위로 상태가 좋은 상등품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탓이라는 설명입니다.
2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달 초 싱가포르에서 두리안의 프리미엄 품종인 ‘무상 킹’ 가격은 ㎏당 3싱가포르달러(2.24달러)에 책정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당 12~13싱가포르달러에 거래됐던 점을 감안하면 4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겁니다.
주요 두리안 공급업체인 MAPC Cdn의 전무이사 샘 탄은 현재 두리안 가격을 두고 “지금까지 본 가격 중 가장 낮은 가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12년 동안 두리안 업계에 종사한 전문가입니다.
올 들어 말레이시아에서 두리안 생산량이 급증한 영향이 우선 큽니다. 싱가포르에 유입되는 두리안 생산량의 85%는 말레이시아가 담당합니다. 말레이시아 농가들은 두리안 가격이 뛴 2016년께 팜유나 고무 등 전통 작물 대신 두리안으로 재배 작물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두리안 나무는 열매를 맺기까지 최소 5~7년이 걸립니다. 이들이 올해 첫 수확을 하면서 생산량이 확 뛴 겁니다.
말레이시아만 생산량을 늘린 건 아닙니다. 태국과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시아 농가들도 고무와 커피 등 기존 작물을 두리안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최근 두리안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중국으로의 수출을 노린 전략입니다.
전반적인 생산량은 늘었지만 품질이 좋은 상등품은 귀하다고 합니다. 올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두리안 과육이 쪼그라드는 등 품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는 겁니다. 샘 탄은 “올해 건조한 날씨로 두리안 생산량의 50~60%는 씨가 타버리고 과육이 줄어들었다”고 말합니다. 시장에 상등품이 많이 풀리지 않으면 전반적인 가격이 오르기는 어렵지요.
말레이시아 연방 농산물 시장 당국은 말레이시아 통화인 링깃화가 올 들어 약세를 이어가며 두리안 가격 하락이 심화됐다고 설명합니다. 달러·링깃화 환율은 올 들어 약 6.2% 뛰었습니다. 링깃화 가치가 떨어지면 두리안을 해외에 수출할 때 가격이 싸게 책정되는 효과가 있지요.
전 세계를 강타한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여파도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올 들어 사람들이 필수품 소비를 늘리면서 두리안 수요가 감소한 점도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