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저의 소설 속 이야기보다 현실 사회가 더 무섭다고 느낍니다. 사회에서 외면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은 매일 악몽 같은 삶을 살아가니까요.”
최근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를 펴낸 정보라 작가(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회비판적 호러’로서의 귀신 이야기를 그렸다”고 말했다.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저주 토끼>에서 ‘토끼 인형의 저주’를 매개로 대기업의 횡포와 사회 부패를 꼬집었다면, 이번엔 초현실적인 귀신들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의 원한을 그렸다. 그는 “마감의 굴레에 딸려오는 일거리가 아니라 마치 놀이를 즐기듯 귀신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고 했다.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보관하는 수상한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다. 연구소엔 ‘손수건’ ‘저주받은 양’ 등 귀신 들린 물건이 널려 있다. 복도와 계단이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귀신이 불쑥 말을 건네기도 한다. 연구실 귀신들에 얽힌 오싹한 이야기는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야간 근무하는 직원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정 작가는 “학교나 사무실 등 익숙한 공간일수록 아무도 없는 밤에 가면 묘한 느낌이 든다”며 “대학 강사를 오래 한 저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었던 연구소를 배경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자기 작품의 장르를 ‘사회비판적 호러’라고 설명했다. 흥미를 자극하는 일반적 공포물보다는 시대를 통찰하는 문학의 기능을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산업재해를 입고 장애인이 된 노동자, 성적으로 이용당하는 여성, 성 소수자 등 다양한 인물의 한(恨) 서린 사연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소름 끼치는 귀신 이야기를 다뤘지만 소설집 곳곳에는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다. 기괴하게만 느껴지던 연구소는 어느덧 약하고 상처 입은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공간으로 거듭난다. 이야기의 화자는 “가장 연약한 존재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귀신 들린 사물을 쓰다듬고, “생명 없는 존재가 밝은 세상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업무”를 해낸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