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베트남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해양치안, 북핵 등의 분야에서 외교·안보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남중국해 갈등 등으로 미·중 경쟁의 요충지가 된 아세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언론발표를 통해 “베트남은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한 우리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아세안 연대구상 이행에 있어 핵심 협력국”이라며 "북한 핵·미사일은 역내 가장 시급한 안보 위협으로서 베트남과 아세안 및 양자 차원 모두에서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기조인 자유, 평화 등을 언급하면서 경제적 협력을 넘어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자고 손짓을 보낸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미국과 밀착하며 대중 압박 선봉장에 선 한국이 미·중 사이에 놓인 아세안 국가들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균형외교'를 기조로 미·중 사이에서 실리적 이익을 챙겨오던 아세안 국가들은 최근 두 강대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미·중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데다 남중국해 문제가 단순 영토 분쟁이 아닌 안보 위협으로 다가오면서다.
필리핀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 일본과도 방위 협정을 체결하는 등 미국과 밀착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미국, 일본과 지역 안보 현안과 관련한 고위급 회담을 하기도 했다. 반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4월 중국과 2년 만에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했다. 미국과 필리핀의 군사 협력 관계가 두터워지면서 맞불을 놓은 것이다.
한국이 미·중 틈바구니에서 외교안보적으로 아세안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은 "베트남은 중국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데다 실용주의 기조이기 때문에 같이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은 낮다"며 "아세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아직 강하기 때문에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면 경색된 한·중관계도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