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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벤처캐피털(VC)이 방위산업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미·중 갈등 고조로 방위산업의 중요성이 대두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20일(현지시간)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미국 VC는 올해 들어 5월까지 200여 개 방위산업 스타트업에 총 17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했다. 1분기에만 145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미국 VC의 방위산업 스타트업 투자금은 2019년 약 160억달러에서 지난해 330억달러로 두 배 넘게 늘어난 데 이어 올해도 증가 추세다.
VC업계의 유동성이 부족해진 와중에 VC들이 방위산업 스타트업 투자를 늘린 이유는 실적 기대 때문이다. 과거 방위산업은 VC에 인기 없는 투자처였다. 주요 고객인 미국 국방부가 내건 조달 계약 기간이 상당히 길어 대기업 위주로 계약이 이뤄지면서 스타트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 군수품 수요가 폭증하고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VC업계는 미국 국방부의 내년 예산(약 8860억달러) 중 적잖은 금액이 방위산업 스타트업으로 유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VC의 방위산업 투자 범위도 확장됐다. 군수품 제조뿐 아니라 첨단 무기를 개발하는 곳에도 투자금을 넣기 시작했다. 이전까진 프로젝트 규모 때문에 섣불리 투자하지 못하던 분야였다. 안드레센호로위츠, 세쿼이아캐피털 등 대형 VC는 ‘키네틱 무기’ 개발사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키네틱 무기는 인공위성에서 중량물을 떨어트린 뒤 운동 에너지로 특정 대상을 파괴하는 무기 시스템이다. 미군에선 ‘신의 지팡이’라고 부른다.
세쿼이아캐피털은 올초 마하인더스트리에 600만달러를 투자했다. 지난해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중퇴한 에단 손튼(19)이 설립한 스타트업으로 수소 동력 무기를 개발한다. 안드레센호로위츠가 투자한 안두릴인더스트리는 공격용 드론용 ‘로터링 탄약’을 개발하고 있다.
VC업계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게임 체인저’가 됐다고 평가했다. 위성 통신, 데이터 분석, 암호 분석, 드론 등 최첨단 방위 시스템이 실전에 투입된 첫 번째 사례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에 최신 기술을 지원해줬다. 우크라이나군은 전투에서 방산 스타트업인 호크아이360이 개발한 위성 레이더 감시망을 활용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출시한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군의 통신 체계로 쓰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방산 스타트업 중에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여섯 곳이나 나올 정도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