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이혼을 거부합니다…어쩌죠?" [긱스]

입력 2023-06-29 08:49
수정 2023-06-29 13:51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법률, 세무, 의료처럼 규제 이슈가 강하고 정확도가 높이 요구되는 영역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앤굿을 운영하는 민명기 대표가 최근 오픈AI의 간담회에서 샘 알트먼에게 질문한 내용입니다. 샘 알트먼은 "리스크를 다루면서도 혁신을 줄여가는 방법으로 규제해선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AI 법률상담과 소송금융 서비스로 법조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민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인터뷰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이혼을 거부합니다. 어떻게 남편 바람을 증명해야 하나요?"

<i>로앤봇: 남편의 바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증거를 수집해야 합니다.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증인 진술서 2.전화 기록 3.문자 메시지 및 이메일 4.사진 및 동영상 5. 은행 계좌 및 신용카드 내역 등입니다. 증인 진술서는 구체적으로</i>…

AI 법률비서 '로앤봇'이 이혼 상담에 답변한 내용이다. 로앤봇은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앤굿이 지난달 내놓은 AI 법률상담 서비스다. 서비스 초기부터 쌓아온 30여만 건의 데이터 중 일부를 활용해 이혼 관련 분쟁을 쟁점별로 세분화하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변환했다. 민명기 로앤굿 대표는 "상담뿐만 아니라 법률 분야에 AI를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많다"며 "챗GPT 등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면 로앤봇은 자체 보유 데이터와 공개된 법률 정보를 통해 정확도를 높인 게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민 대표는 인터뷰에서 "로앤굿은 법률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가장 많이 하는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했다. 로펌에서 변호사로 재직하다 2020년 로앤굿을 창업한 민 대표는 의뢰인이 법적인 고민이 생기는 순간부터 소송이 끝날 때까지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로앤굿은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으로부터 지난해 7월과 올해 1월 총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매월 20만명이 로앤굿 플랫폼에 방문한다. 등록되는 사건들의 착수금 규모는 월 100억원이 넘는다. 의뢰인이 플랫폼의 도움을 받아 사건 개요를 올리면 변호사들이 견적 제안서를 보내는 법률상담이 주요 서비스다. 변호사들이 제안서를 보낼 때마다 한 건당 5000원~3만원 수준의 발송비를 변호사로부터 받는다. 민 대표는 "다른 법률 플랫폼인 로톡이 배달의민족처럼 상담이 가능한 변호사들을 띄우는 거라면 저희는 헤이딜러나 숨고 같이 변호사들의 견적 제안을 받고 의뢰인이 선택하는 견적 비교 서비스"라고 말했다.

민 대표는 올해부터 여러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법률 서비스들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시도가 승소 가능성이 높은 소송의 의뢰인에게 투자하는 소송금융(litigation finance)이다. 만약 로앤굿이 투자한 의뢰인이 최종 승소하면 의뢰인은 로앤굿에서 투자받은 금액보다 더 높은 약정금을 돌려주고, 패소하면 해당 비용은 로앤굿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로앤굿은 최근 투자 받은 70억원을 소송금융 서비스에 집중적으로 쓰기로 했다.


민 대표는 "로앤굿이 직접 의뢰인의 소송 착수금을 투자방식으로 지원하는데, 의뢰인은 패소 시엔 돈을 상환할 필요가 없다"며 "그동안 비용 부담 때문에 변호사를 쓰기 어려웠던 의뢰인들도 변호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법률시장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서비스 시작 후 세 달 여간 200여 건의 소송금융 상담이 접수됐고, 로앤굿은 이중 20건 가량에 투자를 집행했다.

투자 대상을 선정하려면 소송의 승소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 데이터 분석과 AI 등 기술이 접목된다. 민 대표는 "쌓여있는 자체 상담 데이터와 공개된 판례를 통해 내부적으로 AI 분석을 하고 있다"며 "사건화 가능성, 승소 가능성을 평가하는 소송평가모델을 구축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영미권 국가에서 소송금융 서비스는 이미 보편화돼 있고, 일본에서도 성장하고 있다는 게 민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해외의 경우 소송금융 서비스 업체들이 수익률 20% 수준의 투자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민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서비스는.
A. 소승금융이다. 의뢰인의 소송 착수금을 지원하는 모델이다. 의뢰인 승소 시 성공 보수 명목의 약정금으로 지원한 비용의 약 1.5배 가량을 받는다. 패소 시 손실은 우리가 감당한다. 최근에 투자받은 70억원을 직접 투자에 투입할 예정이다. 금융권 연계 대출 모델과는 다르다.

Q. 대출 연계 모델과는 어떻게 다른가.
A. 만약 대출 모델이라면 의뢰인은 패소해도 대출받은 돈을 갚아야 한다. 이기지도 못할 소송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출이 아니라 투자로 보면 질 것 같은 소송엔 돈을 주면 안 된다. 패소하면 바로 회사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길지 질지 여부를 굉장히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소송금융은 이길 소송을 도와주는 개념이다. 대출은 이자율이 제한되지만 투자라면 더 많이 돌려받을 수도 있다.

Q. 투자할만한 소송이라는 판단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A. 판단하기 위한 수단을 소송 평가 모델이라고 한다. 해외 소송금융 회사들의 가장 큰 경쟁력이자 비공개 영업 전략이기도 하다. 그 모델을 우리도 구축하고 있고, 데이터와 AI를 활용한다. 기존에 쌓여있는 30만건의 상담과 제안서 데이터를 통해 어떤 유형의 케이스가 실제 소송 가능성이 큰지를 스크리닝한다. 또 공개된 수십만건의 판례를 통해 승소 가능성을 평가한다.


Q. 소송금융을 이용하는 의뢰인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A. 당장 돈을 내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60%, 돈이 없다기보단 대형로펌 선임 비용으로 기업 운영 자금을 당장 쓰기 부담스러운 기업들이 40% 정도다. 금융권 대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금융권은 법률 쪽으로 특화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Q. 이용할 의뢰인이 많다고 보나.
A. 지금 '나홀로 소송' 비율이 80%다. 그만큼 소송은 많은데 그만큼 변호사 선임을 안 한다. 비용 문제가 크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변호사 도움을 못 받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다. 소송금융은 법적 정의가 경제적 이유로 좌절되는 걸 방지해주는 서비스다. 일종의 법률 보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Q 변호사나 로펌 입장에서는 무슨 장점이 있나.
A. 변호사 숫자가 최근 10년 간 크게 늘었는데 시장 파이는 그리 커지지 않았다. 변호사 총 매출이 연 6조원 정도다. 하지만 의뢰인이 법원에 청구하는 금액은 1년에 70조나 된다. 소송금융은 변호사 선임을 안 하는 사람들이 변호사를 쓸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커지게 만든다. 기존 파이를 갉아먹는 일이 아니라 시장을 70조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는 일이다.

Q. 최근 AI법률 상담 서비스도 런칭했다.
A. 의뢰인들은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굉장히 높게 느낀다. 변호사와 상담하기 전에 궁금한 법률정보나 지식이 자잘하게 많다. 그 니즈를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법률 정보를 검색해 보면서 충족시켰던 건데 AI를 통한 법률 지식 탐색을 활용하면 자신의 맥락에 맞게 궁금한 법률 사항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변호사 사무실로 가기 위한 브리지 역할을 해준다고도 본다.


Q.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AI서비스를 만들었나.
A. 쌓여있는 30만 건의 자체 상담 데이터 중에서 약 1000건 정도만 사용했다. 우선 이혼 분야에 한정해서 공개된 법률정보와 같이 섞어 학습시켰다. 가장 차별점으로 생각했던 건 정확도다. 챗GPT나 일반 AI는 법률에만 한정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도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면 법률은 정확도가 중요하다.

Q.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더 고도화할 계획은.
A. 법률 서비스에 AI를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소송금융에서 소송평가모델에도 AI를 활용할 수 있고, AI기반 판례 검색도 준비하고 있다. 첫 모델인 AI상담이 꽤 잘 돌아가서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AI는 돈이 많이 든다. 외부 투자가 필요하다. AI상담 서비스를 무료로 배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협회에서 불법 소지가 있다고 목소리를 내니까 AI에 공격적인 투자하는 게 맞는지 망설여지는 측면이 있다. <i>(*로앤봇이 출시된 날, 변협은 로앤굿에 대한 형사 고발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i>투자자 입장에서도 AI는 많은 돈이 필요하니까 비즈니스 가능성이 있냐를 볼 수밖에 없는데 변협은 불법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니까 고도화 속도가 지체된다.

Q. 로앤굿 플랫폼의 최종적인 모습은.
A. 처음부터 의뢰인을 기준으로 생각했다. 의뢰인이 법적 고민이 생기는 순간부터 소송이 끝날 때까지의 문제를 다 해결히는 플랫폼이 목표다. 다른 플랫폼인 로톡이 변호사 광고로 시작해서 그 다음에 판례 검색 서비스를 냈고 변호사 업무 효율을 증진시키는 걸 목표로 삼았다면, 우리는 의뢰인의 A to Z를 커버하고 싶다. 가장 먼저 냈던 견적 비교 서비스를 통해 변호사 탐색을 제안하고 싶었고, 그 다음에 변호사를 선임할 때 필요한 착수금 관련 소송금융, 그리고 소송을 진행할 때 사건관리까지 플랫폼에서 한 번에 제공하고자 한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