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및 철도 유관기관과 협력해 고속차량, 트램 등 해외 철도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은 지난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 국제철도기술산업전’에서 ‘동력분산식 고속차량(EMU-320)’,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차량’ 등 최신 철도차량을 선보이며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해 7월 폴란드 ‘K2 전차’ 수출 계약에 성공하며 실적을 반등시킨 데 이어 주력 제품인 고속차량의 첫 해외 수출 달성으로 중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외 시장 노리는 국산 고속철
현대로템은 지난 3월과 4월 한국철도공사와 SR이 각각 발주한 7100억원, 1조800억원 규모의 동력분산식 고속차량(EMU-320) 공급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해 9월 현대로템 창원공장에서 처음 출고된 EMU-320은 2021년부터 영업 운행에 투입된 EMU-260보다 빠른 시속 320㎞의 최고 영업속도로 더 높은 운송 효율과 성능을 갖췄다.
EMU-320은 2010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국산화에 성공한 동력집중식 고속차량 ‘KTX-산천’ 이후 성능 개량을 목표로 산·학·연이 협업한 결과물이다. 전 세계 고속철 시장의 70% 이상이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으로 대체되고 있는 만큼 기술 수출을 위해 꾸준히 연구개발을 해왔다. 동력분산식은 동력집중식보다 가·감속 성능이 뛰어나고 승객도 더 많이 실어 나를 수 있어 역 사이가 짧은 철도 환경에 적합하다.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이 등장하기까지 투입된 민·관 비용은 약 2조7000억원에 달한다. 기술 개발 및 시제품 제작부터 양산 안정화 단계까지 약 30년이 소요됐다. 국가핵심기술 목록에 고속철 기술이 포함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시범 운전 중인 GTX-A 노선 전동차에도 고속차량 기술이 접목돼 있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 발주된 고속차량 입찰 사업이 향후 현대로템의 글로벌 고속철 시장 진출에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철도 시장을 선점한 독일, 프랑스 등 철도 선진국과 경쟁하고 수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국내 시장에서 고속차량 납품 및 운영 실적을 쌓는 것이 필수다. 올해 1분기 철도 부문 수주 잔고는 8조2799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이집트 터널청으로부터 7557억원 규모의 전동차 공급 및 현지화 계약을 따냈다”며 “같은 해 10월에는 대만 타이베이 전동차 공급 사업의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는 등 꾸준한 해외 성과를 기반으로 고속철 수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K2 전차는 해외 수출 본격화
현대로템은 최근 폴란드와 K2 전차 후속 수출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폴란드 국영방산그룹 PGZ 및 PGZ 산하 방산업체 WZM과 폴란드형 K2 전차(K2PL) 생산·납품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컨소시엄 이행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세부 협의를 진행 중이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7월 폴란드 군비청과 사상 처음으로 K2 전차 완성품 수출 1차 계약을 맺었다. 기술 이전 및 현지 생산 기반 마련을 위한 2차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로템이 K2 전차를 조기 납품함에 따라 빠르게 무기 인도를 원했던 현지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로템은 1차 계약 물량 180대 중 초도 출고분 10대를 계약 체결 4개월 만에 현지에 인도했다. 이어 지난 3월에는 기존 계획보다 3개월 앞서 5대를 인도했고, 지금까지 28대를 넘겼다. 내년에는 56대를 현지에 인도할 계획이다.
K2 전차는 ‘다른 구식 전차와 비슷한 재래식 무기 아니냐’는 편견을 깨고 현대전에서도 효과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한 최신예 전차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날아오는 적군의 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능동방호장비가 탑재됐을 뿐만 아니라 적은 수의 승무원으로도 기동이 가능해 아군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정부와 군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신속한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며 “K2 전차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전차 역시 기동력과 화력, 승무원 생존력을 대폭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K2 전차 수출로 기대되는 점은 품목 다변화를 통한 해외 시장 확장이다. 납품 실적 및 국가 간 관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방위 산업은 일단 수출 물꼬를 트고,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로템은 그간 수출 국가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K2 전차를 선보였던 만큼 다른 방산 라인업도 플랫폼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 1분기 방산 부문 수주 잔고는 5조5017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보병 수송에 특화된 차륜형장갑차는 임무에 따라 차륜형지휘소차량과 차륜형의무후송차량 등 여러 형태로 계열화할 수 있다. 지난해 첫 양산에 들어가며 한국군 전력화가 진행 중인 차륜형지휘소차량은 적군의 기습에 취약한 기존 천막형 지휘소의 단점을 보완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제품이 공개된 차륜형의무후송차량 역시 향후 아군의 인명 피해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차를 계열화한 장애물개척전차도 2019년 최초 양산에 이어 이듬해 후속 계약이 진행되는 등 한국군에서 충분한 성능을 인정받음에 따라 유럽, 중동 지역 수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수소·스마트물류 토대 마련하는 에코플랜트
현대로템은 수소, 스마트물류 등 인프라 구축 사업에서도 새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수소는 현대로템이 개발 중인 차세대 철도차량과 방산 품목에도 접목시킬 수 있는 고효율 연료다. 지난 14일 국제철도기술산업전에서는 수소전기트램을 최초 공개했다. 2021년 개발을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에코플랜트 사업 부문은 수소 추출부터 충전까지 수소 공급에 필요한 노하우를 쌓고 있다. 현대로템은 2020년 충북 충주, 강원 삼척 등에서 수소추출기 3대를 최초 수주하며 수소 충전 인프라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수소출하센터, 액화수소 충전소 구축 등 굵직한 수소 인프라 사업을 따냈다. 지난해 말 기준 총 8개의 수소추출기를 수주 또는 납품했고, 수소충전소 6개소와 이동식 충전소 3기, 출하 센터 2개소 등 실적을 거뒀다.
수소 인프라 사업 확장의 원동력은 국산화다. 현대로템은 2020년 의왕연구소에 약 1983㎡ 규모의 수소추출기 공장을 준공하고 가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드는 수소추출기는 소모성 자재인 촉매제를 제외하고 모든 부품이 국산품으로 이뤄져있다.
국산화된 수소추출기는 외국산 대비 15% 이상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안정적인 운영과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충북 충주에 납품한 바이오 그린수소 충전소의 수소추출기는 가동률 99% 이상을 유지하며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다. 하루 최대 수소버스 20대, 수소 승용차 120대 충전이 가능한 용량을 뽑아내는 중이다.
현대로템은 첨단 산업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스마트 물류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무인운반차(AGV)와 자율주행로봇(AMR), 자동창고 등 모빌리티 제품의 생산부터 물류 효율화를 위한 최신 자동화 설비까지 다양한 공급 역량을 갖출 계획이다. 현대로템은 앞서 국내외 주요 자동차 업체의 생산라인에 필요한 각종 운반 설비를 공급했다. 스마트 물류 사업의 역량을 더욱 높여 전기차 전환을 추진 중인 완성차 업체를 지원할 계획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