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K2 전차가 끌고 수소가 민다…진격의 현대로템

입력 2023-06-21 16:13
수정 2023-06-22 08:55
현대로템이 부가가치가 높은 고속철도차량과 K2 전차의 해외 판로 확대에 나섰다. K2 전차는 지난해 최초로 폴란드에 완성품을 수출하며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올해는 고속철(KTX-산천) 국산화에 성공한 지 15년이 된 만큼 고속차량의 해외 수출에도 공을 들일 계획이다. 현대로템은 한때 현대자동차그룹의 ‘아픈 손가락’이었지만, 경영 정상화에 성공한 데 이어 제2의 도약에 나서는 모습이다. ○철도 시장 과열에 경영난 겪었지만현대로템(옛 현대정공)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한국형 전차 개발을 위해 1977년 창립한 회사다. 1979년 최초의 국산 디젤기관차를 생산했고, 1985년에는 첫 한국형 전차 ‘K1’을 선보였다. 1999년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의 철도 차량 생산부문을 합병한 뒤 2001년 현대차그룹에 편입됐다. 2007년 현재 사명으로 변경했다.

현대로템은 레일솔루션(철도), 디펜스솔루션(방산), 에코플랜트(플랜트) 등 세 가지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고속철과 K2 전차는 현대로템이 정부와 학계, 연구기관 등과 협력해 2008년 자체 개발한 대표 상품이다.

이 회사는 국내 철도 시장의 경쟁이 과열됐던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경영난을 겪었다. 이 시기 국내 철도시장에 경쟁업체가 늘면서 저가로 수주에 뛰어든 탓이다. 마진이 악화하면서 고정비 부담 탓에 2014년부터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2015년 차입금이 2조원을 넘어서면서 부채비율은 250%까지 높아졌다. ○철도·방산 역대 최대 일감 확보이용배 사장은 2019년 취임한 뒤 수익성 위주 수주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동시에 품질 혁신과 납기 준수에도 힘썼다. ‘고객이 시장을 만든다’는 경영 원칙에 따라 고객 만족이 수주로 이어지는 선순환 경영을 펼친 것이다.

그 결과 현대로템은 철도와 방산 부문에서 사상 최대 수주 잔고를 확보했다. 올해 1분기 기준 수주 잔고는 14조3139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철도 부문은 8조2799억원, 방산 부문은 5조5017억원으로 역대 가장 많은 일감을 확보했다. 경영난이 한창이던 2019년과 비교해 수주 잔고는 60%(5조3729억원) 증가했다. 철도 부문은 12.8%(9419억원), 방산 부문은 405%(4조4137억원) 늘었다.

지난 4월 SR로부터 수주한 1조원 규모 고속철 계약건까지 더하면 철도 부문 수주 잔고는 9조원을 넘어선다. 방산 부문은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인 PGZ 및 산하 기업인 WZM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K2 전차 2차 협상을 벌이고 있다. K2 전차 820대 분량을 현지에서 생산하게 되면 방산 부문 역시 역대급 수주 잔고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실적 더욱 개선 전망이 사장은 취임 후 재무구조 개선 등 강도 높은 체질 개선 작업도 함께 추진했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동산 등 비핵심자산부터 매각했다. 이자비용을 줄이기 위해 차입금도 꾸준히 축소했다.

그 결과 총차입금은 2008년(8948억원)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1조원 미만으로 내려왔다. 1분기 총차입금은 9514억원으로 집계됐다. 2015년 47.9%에 달했던 차입금의존도는 20.6%로 줄었다. 통상 차입금의존도가 30% 이상이면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으로 본다.

차입금을 축소함에 따라 부채비율도 크게 줄었다. 1분기 부채비율은 205.1%로 2018년 말(261.2%) 대비 56.1% 포인트 하락했다. 선급금을 제외한 부채비율은 125%를 기록해 사실상 재무구조가 안정됐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매출 3조1633억원, 영업이익 1474억원을 거뒀다. 전년 대비 각각 10.1%, 83.8% 늘었다. 영업이익률이 5%에 육박하며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다. 올 1분기엔 매출 6844억원, 영업이익 319억원을 기록하며 13개 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올해는 실적이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올해부터 폴란드향 K2 전차의 인도 물량이 늘어난다. 이달까지 18대를 현지에 인도했으며, 내년에는 56대를 넘길 계획이다. 인도 물량 확대에 따라 방산 부문 실적은 가파르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내수용’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유럽의 방패’로 거듭난 덕분이다.

현대로템은 고속차량의 해외 수출에도 집중하고 있다. 1990년 인도네시아에 전동차를 최초 수출한 이래 지금까지 38개국에 전동차를 공급해 왔다. 해외에서 오랜 기간 신뢰를 쌓은 만큼 고속차량 부문에서도 ‘수출보국’을 실현하겠다는 전략이다. ○수소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현대로템은 2020년 수소 충전 인프라 사업에 진출한 뒤 수소 분야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수소 출하설비와 생산설비, 충전설비 사업까지 진출한 데 이어 수소에너지를 활용한 수소전기트램까지 최종 개발을 앞두고 있다. 본격적인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지난 14일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철도기술산업전에서 개발 중인 수소전기트램을 최초 공개했다. 2021년 개발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수소전기트램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수소전기트램은 수소연료전지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시간당 약 80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의 미세먼지를 저감하는 등 공기질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 고효율 에너지 사용으로 운행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현대로템은 수소전기트램 상용화를 위해 핵심 기술인 수소연료전지시스템과 수소저장시스템, 에너지관리시스템 기술을 개발해 왔다. 향후 시험 주행을 마치고 양산 단계까지 진행되면 해외 시장 진출도 바라볼 예정이다.

수소 충전 인프라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로템은 수소추출기 등 국내 수소충전소에 탑재할 핵심 설비를 생산해 납품하고 있다. 수소충전소는 고압의 수소를 영하 38~39도에서 급속 냉각해 디스펜서(주입기)에 전달하는 게 핵심이다. 현대로템은 핵심 설비인 냉각기와 주입기, 수소저장용기를 제작해 납품한다. 앞으로 추가 수주도 기대할 수 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경영 혁신 활동을 통해 경영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하고 시장에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