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아버지가 “아들이 친자식이 아님을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근거로 친아들이 아닌 사실은 입증됐지만 소송을 통해 법적 가족관계를 부정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고 판단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중소기업 회장 A씨가 형 B씨가 아버지 C씨의 친아들이 아님을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제기한 상고를 최근 기각했다.
이 분쟁은 사망한 C씨가 2020년 7월 초 “B씨가 친아들이 아님을 인정해달라”는 친생부인(親生否認)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B씨는 1956년 5월 태어나 곧바로 C씨 가족관계등록부에 장남으로 등록됐다. 그런데 80대 아버지의 소송으로 60여년 만에 친자관계를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게 됐다. C씨가 소송 제기 후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나자 A씨와 여동생 D씨가 원고 지위를 물려받으면서 분쟁은 ‘형제전’으로 바뀌었다.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관계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기에 이 분쟁의 쟁점은 태어난 지 64년이 지나서도 법적으로 친자식임을 부인하는 것이 가능하냐였다. 민법 제847조 1항에 따르면 친생부인 소송은 친자관계가 아닌 사실을 안 날부터 2년 안에 제기해야 한다.
B씨는 “아버지는 한참 전 내가 친아들이 아님을 알았다”고 주장했지만 1심에선 “제출된 증거만으론 C씨가 소송 제기 전 B씨가 친자식이 아님을 명확히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판결에 불복한 B씨는 2심에서 “개정 이전의 민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을 들고나왔다. 과거 민법에선 친생부인 소송은 ‘출생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안에 해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1997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05년 지금의 내용으로 개정됐다. B씨는 민법 개정안 부칙에 ‘법 개정으로 소송 제기가 가능한 기간이 바뀐 경우, 개정안 시행 시점에 종전 규정에 의한 기간(출생 사실을 안 지 1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개정 규정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제시했다. B씨의 친생부인 소송은 태어난 지 64년 뒤에 진행됐기 때문에 개정 이전 규정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가 받아들여지면서 B씨는 판결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는 옛 민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제소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적법하지 않은 소송”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판단이 유지돼 B씨는 승소를 확정 지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