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워런 버핏을 따라갔어야 했나. 버핏이 일본 종합상사 주식을 추가로 매입했다고 밝힌 것이 지난 4월 중순이었다. 일본 종합주가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그 뒤로만 20% 넘게 올랐다. 어느 나라 주가가 강세를 보이면 통화 가치도 함께 오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엔화는 그렇지 않다. 달러당 엔화 환율이 140엔을 넘나든다. 버블 붕괴 후 가장 강한 주가와 가장 약한 엔화, 그 사이엔 일본 경제의 딜레마가 숨어 있다. 버핏이 일본으로 간 까닭은?주가 상승 외에도 일본 경제에 좋은 소식이 많다. 우선 물가 상승이다. 높은 물가 상승률은 보통 부정적인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은 반대다.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디플레 탈출 신호로 해석된다.
지난 1월 일본의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3%로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 물가 상승률은 3.4%로 낮아졌지만 일본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 2%는 넘고 있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7%로 전문가 예상치(0.5%)를 넘어섰다.
지정학적 환경 변화도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우방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 나서면서 일본이 중국을 대신할 투자 적격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버핏도 일본 주식 투자를 늘린 배경으로 지정학적 긴장을 꼽았다.
더구나 엔화 가치가 하락해 외국인 투자자는 부담 없는 가격에 일본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 만수르 모히우딘 뱅크 오브 싱가포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강한 성장과 높은 물가 상승, 엔화 약세가 일본 자산의 매력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너무 싸서 충격적인 엔화일본 주가, 경제성장률, 물가와 달리 엔화는 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물가가 너무 싸서 충격받았다’는 목격담을 전한다. 엔화 가치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은 19일 100엔당 900원 아래까지 내려갔다.
통화정책 차이에 따른 내외금리 차 확대가 주된 요인이다. 지난해부터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렸다. 일본은 요지부동이다. 일본은행은 지난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연 -0.1%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 격차는 5.35%포인트다. 무역수지 적자도 엔화 약세 요인이다. 일본은 2021년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22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디플레 끝’ 확신 못 하는 일본은행경제성장률이 반등하고 물가상승률이 4%를 넘나들어도 마이너스 금리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데 일본 경제의 고민이 있다.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경제 성장 속도가 점차 느려질 가능성이 높으며 수입물가 상승의 영향이 약해지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했는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가 상승이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공급 충격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는 점도 일본은행이 정책 기조 전환에 신중을 기하는 배경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달 “비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통화 긴축을 하면 경제 상황이 악화해 물가 상승률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저출산·고령화와 막대한 국가부채 등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 섣부른 금리 인상은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고 소비 감소를 정부 지출로 메우려 하면 국가부채가 늘어난다. 통화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통화정책의 유연성을 제약하고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