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이 3년 전 인수한 일본 다케다제약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의약품 판권을 다시 매물로 내놨다. 바이오업계에선 2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사진)이 내년 신약 개발사로의 대전환을 앞두고 본격적인 사업 재정비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사업 재정비 차원…복수 후보 관심18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기존 인수했던 다케다제약 아태지역 의약품의 해외 판권을 매각하기로 하고 매각주관사로 JP모간을 선정했다. 복수의 다국적 제약회사가 셀트리온 측에 인수 의향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셀트리온은 2020년 6월 다케다제약으로부터 한국을 비롯해 태국 대만 홍콩 마카오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등 9개 국가에서 판매 중인 18개 의약품의 특허, 상표, 판매에 대한 권리를 인수했다. 최종 인수 가격은 3074억원이다. 인수한 제품군에는 당뇨병 치료제인 네시나와 액토스, 고혈압 치료제 이달비 등 전문의약품과 감기약 화이투벤, 구내염 치료제 알보칠 등 소비자에게 잘 알려진 일반의약품도 포함됐다. 기존 주력 사업인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에 케미컬의약품(합성의약품) 분야를 강화하고 호주 동남아시아 등으로 시장을 넓혀 글로벌 종합 제약·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게 셀트리온 측 청사진이었다. 하지만 당시 화이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레드오션’으로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일반의약품 사업의 분사 및 매각을 검토했다.
셀트리온 측의 ‘베팅’은 최근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지형이 급변하면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에서 바이오시밀러도 의사 처방 없이 약사의 대체 처방이 가능해지고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기간 만료가 도래하면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예상 밖으로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셀트리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SC(피하주사 제형)와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 등 바이오시밀러 사업 영업이익률은 30%에 육박했지만 일반의약품(케미컬)은 10%에 그쳤다. 다만 향후엔 40%로 개선될 것이란 게 셀트리온 측 전망이다.
이번에 한국을 제외한 해외 8개국 다케다 제품의 판권을 매각하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반기 대어(大魚) 노리는 서정진
“다시 돌아온 이상 그냥 나가지 않겠다.”
지난 3월 경영 일선에 2년 만에 복귀한 서정진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심경이다. 그는 “전략이 큰 틀을 잡을 것이고 M&A 역시 발동을 걸어 성과를 내겠다”면서도 “문어발식 경영은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매각 추진엔 ‘선택과 집중’ ‘자금 확보’ 등 다양한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서 회장이 내건 2030년 셀트리온 목표는 ‘매출의 60%는 바이오시밀러, 40%는 신약에서 내는 글로벌 바이오업계 선두주자’다. 그는 “신약물질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 비용은 지금보다 증가할 예정이지만 유상증자하거나 부채를 늘리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내년부터 여러 개 물질을 동시에 임상에 싣겠다고 선언한 만큼 관련 비용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글로벌 1위 수액 전문 제약사(미국 박스터) 인수를 지난달 포기한 셀트리온이 하반기 대형 M&A를 성사시킬지 주목하고 있다. 서 회장은 “4조~5조원의 실탄을 마련해 메신저 리보핵산(mRNA) 등 바이오 플랫폼 기술을 확보한 회사 위주로 인수를 검토하겠다”며 “올 3~4분기 자금 집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현재 연결기준 현금 가용 자산이 5400억원뿐이지만 자사주, 채권, 주식교환, 서 회장 개인 주식 등을 동원하면 조단위 M&A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대규/남정민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