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왜 작가가 됐느냐’ ‘왜 소설을 쓰게 됐느냐’ 묻곤 해요. 그럴 때 저는 ‘제가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소설가 천명관(사진)은 지난 17일 서울국제도서전의 <고래> 북토크에서 “소설은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은 14~18일 닷새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2004년 출간된 장편소설 <고래>는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약 20년 만에 재주목받았다. 세계 3대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의 한 부문으로, 영어로 번역된 문학작품에 수여한다. 소설은 세 여성의 3대에 걸친 거친 삶을 통해 인간의 욕망, 그 성취와 몰락을 그렸다. 김지영 번역가가 영어로 옮겨 올 1월 영국에서 출간됐다.
‘실패’는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본질이다. 천 작가는 “현실은 부조리하다”며 “사람이 착한 일을 했다고 복을 받지 않고, 나쁜 일을 했다고 반드시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이어 “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나는 살아가야 하는데, 그건 괴로운 일이라 평소엔 잊고 살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며 “작가는 이 파탄 난 세계를 붙잡고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편소설 <나의 삼촌 부르스 리>에 썼던 ‘작가의 말’ 일부를 낭독했다. “실패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생략) 왜 누군가는 구원 없는 실패담을 읽는 걸까요. 불행을 즐기는 변태적 가학 취미일까요? 그건 우리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구원이 보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책이 훌륭한 작품이라면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천 작가는 “<죄와 벌> <이방인> 등 소위 세계 고전이라는 작품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문학의 위대함은 그렇게 우리가 책을 통해 연대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커상 후일담도 나눴다. 천 작가는 “에이전시와 통역가 등이 혹시 모르니 며칠 전부터 수상 소감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상도 안 받았는데 수상 소감을 먼저 쓰기가 멋쩍었다”고 했다. “통역가에게 수상 소감을 주면서 ‘만약 상을 못 받으면 반드시, 그 즉시 삭제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내 휴지통에는 무수한 수상 소감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것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인생 책이 궁금하다”는 질문에는 <삼국지>를 꼽았다. 그 이유로는 “숭고한 관계들, 운명적 절망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신작 계획에 대해서는 “창비에서 연재하다가 중단한 소설이 있는데 마무리해 출간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