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무역수지 흑자국, 최대 여행객 방문국, 최대 유학 대상국. 한·중 수교 이후 우리가 그려온 중국의 이미지다. 현재의 중국은 이 같은 모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27년9개월 만에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절반 이상이 사업 축소나 철수를 고민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대중국 전략에서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 정세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대비해 중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급처를 최소 두 곳 이상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원자력, 우주공학,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등 군사 목적 기술은 아예 중국 투자를 제한하겠다는 국가도 적지 않다. 서방 국가의 관점에서 중국은 이미 수익 획득을 위한 투자 대상에서 리스크 관리 대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올 들어 달러 블록화에 속한 국가의 주가는 상승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국가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도 중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투자 포트폴리오에 반영하는 추세다.
올해 중국 경제는 회복세가 더딜 가능성이 크지만 정부 목표치인 5% 안팎의 성장은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과거처럼 대규모 경기 부양을 통한 양적 성장보다 리스크 관리와 구조조정을 통한 질적 성장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경제는 만성 부채와 부동산 침체에 따른 성장 동력 부재, 고용 불안 및 소비 회복 지체 등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경제위기 때마다 글로벌 시장과 한국 경제의 구세주로 나섰던 중국의 역할을 이제는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중 패권 경쟁 격화 속에 중국 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풍조가 만연한 점도 우리에겐 걱정거리다. 중국 정부는 다양한 자국 산업 우대 조치를 발표하며 수입 대체와 기술 자립에 매진하고 있다. 수입품에 대한 기준은 더 까다로워지고, 중국 시장 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 스마트폰과 아모레 마스크팩에 열광하던 중국은 온데간데없다.
중국은 변했다. 우리도 변해야 한다. 30년 전 한·중 수교 당시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중국은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발 빠르게 감지하고, 대응하는 능력이다. 중국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냉철한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정진 KB경영연구소 WM스타자문단·중국금융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