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경제에 '1원 1표' 아닌 '1인 1표' 적용 주장, 근거 있나

입력 2023-06-19 10:00
수정 2023-07-13 00:02

“1원 1표의 시장 논리 함정에 빠지지 않고 1인 1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한국 전직 대통령 말이 화제가 됐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교수가 쓴 책을 추천하며 쓴 글이었다. 반(反)시장, 반기업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정치, 즉 선거에서는 누구나 1인 1표다.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의 큰 원칙이다. 반면 경제에서는 예컨대 지분에 따르는 게 기업 유지의 전제조건이면서 경영의 원칙이다. 부실기업 처리 등 채권의 행사와 귀책사유 문제에서도 대출 금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의사 반영이 달라진다. 말하자면 1원 1표다. 지분·자본금, 대출금·채권액 크기에 따라 권리와 의무 모두 차등화된다. 이를 부정하는 경제에서의 1인 1표 주장, 근거 있나.[찬성] 격차해소 취지, '결과의 평등' 가치 봐야…쏠림 키우는 신자유주의 제동 의지수요와 공급을 중시하고 자유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이 효율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볼 필요도 있다. ‘시장체제의 경제학’은 완전경쟁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완전경쟁시장은 이론적 모델일 뿐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수요와 공급 원리도 가격 결정 구조를 설명하고, 재원의 효율적 배분에 유효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그 결과로 생기는 경제적 격차와 불균형의 심화다. ‘시장의 실패’ 현상도 자주 빚어진다. 자산과 소득에서의 격차가 커지면서 양극화로 치닫는 것은 현대사회의 큰 문제다. 효율을 중시하는 자유시장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이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나아가 현실적으로 기회가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결국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 결과까지 평등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공정한 배분이 이뤄지도록 국가 기능을 키워야 한다. 그런 기능과 역할에서 정부가 중요하다. 그런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1원 1표가 나왔다. 그래야 기술, 자본, 인력, 수익 등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대기업으로의 쏠림도 막는다는 취지다. 1원 1표 시스템을 내버려두면 격차는 심해진다. 확장 재정, 복지 프로그램 강화도 그런 철학을 바탕에 두고 있다.

경제학을 전문가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기존 경제학자들은 대개가 1원 1표라는 금전적 다수결에 기대고 있다. 역시 그 결과는 불평등 심화다. 그러니 이런 경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국가주도의 계획 경제가 있었고,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정치 경제를 하는 나라도 있다. 1원 1표라는 말 자체보다 이를 통한 지향점과 추구하는 가치·철학을 볼 필요가 있다.[반대] 시장에서까지 1인 1표는 정치적 선동…마차가 말을 끄는 소주성, 양극화 심화경제와 시장에서까지 1인 1표, 즉 모든 참여자에게 동등한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엉터리다. 포퓰리즘 차원을 넘어 저급한 정치적 선동이다. 정치·선거에서 1인 1표만큼이나 당연하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경제 운용의 원리가 1원 1표다. 지분율·채권액 등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면서 모든 시장 참여자가 스스로의 선택과 행위에 책임지게 하는 시장경제의 원칙이다. 그런 원리로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활용돼왔다.

경제 전문가 배제론 역시 무책임하다. 진짜 전문가를 배제한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 때 경제적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소득에서만 격차가 벌어진 게 아니었다. 잘못된 시장 개입으로 집값을 다락같이 올려 부동산 양극화마저 극심했다. 그때 만든 부동산 임대차 3법도 전셋값만 폭등시켰을 뿐 지금 역전세난에는 속수무책이다. 약자 지원을 명분 삼았지만,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팽창재정으로 단기간에 나랏빚만 급격히 늘렸다. 1000조원이 넘는 국가채무는 미래세대가 갚아야 한다. 노동약자를 위한다며 급히 올린 최저임금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부담을 줬고 청년들에게는 일자리 감소라는 고통을 안겼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부 때 요직을 맡았던 좌파 성향 경제학자조차 ‘말이 아닌, 마차가 말을 끄는 식’이라고 비판을 했나. 경제를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감성과 감정에 맡겼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한 게 지난 정권 5년의 교훈이다.

드러내놓고 정치 경제를 하자고 들면 기업과 산업의 혁신도 막는 결과가 된다. 그 당시 타다금지법으로 택시의 혁신적 서비스를 막았고, 재벌을 응징하고 규제한다는 바람에 한국 대표급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밀리게 됐다. 세계 반도체대전에서 한국이 쫓기는 것도 빗나간 정책과 무관치 않다. 선동 정치가 개입하지 않아야 경제가 성장하고 시장도 성숙한다.√ 생각하기 - 경제도 1인 1표라면 세금도 빈부 없이 같이 내나…성장·혁신, 자원배분 원리 봐야 현대 민주주의는 선거를 빼고 말하기 어렵다. 양자는 서로 성과이자 요인이다. 1인 1표는 정치의 핵심인 선거에 적용된다. 이 원리에 따라 구성원 모두 대등한 권리로 정부를 구성하고 국가 권력을 만든다. 경제 문제도 이 원칙에 입각한 민주정부와 합법적 국가권력으로 풀어나간다. 경제에서조차 1인 1표라면 논리적으로는 부자나 그렇지 않은 경우나 세금도 똑같이 내야 한다. 저소득층이라고 각종 복지혜택을 더 주는 것도 이상해진다. 그런 식으로 가면 경제만이 아니라 국가가 붕괴된다. 경제를 ‘정치 경제’로 만들어 1인 1표의 원시적 공산화를 지향하면 번영과 혁신은커녕 성장 자체가 어렵다. 물론 양극화와 격차 해소, 사회적 약자 지원 강화, 생산적·선별적 복지의 정착은 외면할 수 없는 현대국가의 큰 과제다. 선진국 사례를 봐가며 충분히 풀 수 있다. 구호와 달리 1원 1표 주창자들이 소득과 자산 분배를 더 악화시킨 것도 역설적 사실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