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16일 14:4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천만영화 '택시운전사'와 '승리호' '추격자' 등을 제작한 국내 대표 컨텐츠 제작사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 7곳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을 통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다. 기업가치는 78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K-컬처 기업이 미국 증시에 직접 진입한 첫 사례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컨텐츠 기업 7곳을 자회사로 둔 지주사 케이엔터홀딩스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스팩사인 글로벌스타와 이날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스타는 북유럽과 아시아 지역 기업과 합병에 초점을 맞춰 설립된 스팩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심사를 마치고 올해 12월엔 거래를 시작하는 게 목표다.
합병 과정에서 기업 가치는 6억1000만달러(한화 7830억원)으로 평가됐다. 절차가 마무리되면 케이엔터는 케이웨이브미디어로 이름을 바꿔 나스닥에서 거래된다. 법무법인 광장과 롭앤롭, 삼정KPMG가 각각 법률과 회계를 자문했다.충무로의 잔뼈 굵은 감독들 '의기투합' 미국行이번 상장은 국내 종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회사가 최초로 나스닥에 입성한 사례다. 케이엔터홀딩스는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굴지의 영화·드라마 감독을 확보하고 있다.
'택시운전사'로 이름을 알린 영화사 '더램프'가 대표적이다. 택시운전사는 박은경 더램프 대표의 첫 천만영화다. 관객수 1218만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승리호' '추격자' '작전' '늑대소년'을 제작한 영화사 '비단길'의 윤인범·김수진 공동대표도 합류했다. 승리호는 넷플릭스 공개 당시 26개국에서 스트리밍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병길·정병식 형제가 대표로 있는 '앞에있다'도 케이엔터홀딩스에 합류했다. 이 회사믐 '내가 살인범이다'를 시작으로 '카터' '악녀' 등을 흥행시켰다.
국내 톱티어 드라마 제작사 '안자일렌'도 합류했다. 드라마 '육룡이나르샤' '녹두꽃'을 연출한 신경수 감독, '모범택시' '닥터탐정'의 박준우 감독, '조선변호사'의 김승호 감독이 몸을 담은 곳이다. 디즈니 '그리드'와 JTBC '인사이더' 등을 제작한 배정훈 사단도 케이엔터홀딩스 내부 드라마팀에 합류했다.
케이엔터홀딩스는 제작 역량을 통합해 이들이 가진 원천 IP의 가치를 극대화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할 예정이다. 버추얼 프로덕션 '퍼스트버추얼랩'과 국내 콘텐츠 MD상품(굿즈)을 제작하는 회사와도 협업한다.
이들이 미국행을 결정한 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지식재산권(IP)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국내 제작사들이 보유한 우수한 오리지널 IP에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력을 직접 연결하면 토종 컨텐츠 기업들이 재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콘텐츠 유통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많은 영화·드라마 감독들이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선택하고 있어서다.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 단독 방영을 결정한 승리호가 대표적이다. 케이엔터홀딩스는 올해 글로벌 대형 OTT와 세 편의 작품 계약을 체결해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전 세계 방영이 목표다.글로벌 OTT와 협상력 키운다이들을 모은 건 최평호 케이엔터홀딩스 회장과 이영재 대표다. 케이엔터홀딩스의 주요 자회사인 쏠레어파트너스에서 각각 대표와 부사장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쏠레어파트너스는 문화콘텐츠 투자 명가로 자리매김한 벤처캐피탈(VC) 업체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 회장은 CJ ENM 내 영화 사업본부장 출신으로 CJ CGV를 설립한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영화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문 투자사를 세웠다. 영화 '기생충' '엑시트' '극한직업' '82년생 김지영' '범죄도시'에 모두 앵커 투자자로 참여해 흥행시켰다. 지난 6년간 167편의 작품에 총 1700억원을 투자했는데 국내 영화 투자사 중에선 최대 규모다. 그중 극한직업은 370%의 수익률을 올린 효자 포트폴리오였다.
케이엔터홀딩스는 나스닥 상장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자본력을 키우고 글로벌 OTT를 대상으로 협상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원천 IP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해 OTT 등 대형 배급사와 협상력 측면에서도 우위에 서겠다는 전략이다. 나스닥 상장은 글로벌 투자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받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국내 상장과 비교해 이점이 있다.
'오징어게임'과 '기생충' 등 다수의 한국 문화콘텐츠 기업들이 글로벌 진출엔 성공했지만 업계에선 자본력의 한계로 글로벌 OTT들에 오리지널 IP를 납품하는 역할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IP를 만들었음에도 정작 수익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배급사들이 대부분의 몫을 가져가는 구조라는 점에서다. 제작사들은 OTT업체들로부터 제작비에 더해 전체 수익의 10~20% 수준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최평호 케이엔터홀딩스 회장은 "주요 제작사 대표들이 더 이상 자본력을 앞세운 OTT들에 오리지널IP를 납품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제작사들도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의기투합했다"며 "서로 길게는 20년간 작품을 같이 해오거나 호흡을 맞춰온 인사들로 구성돼 시너지도 뚜렷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은/차준호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