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삼립의 베이커리 브랜드 ‘미각제빵소’가 지난해 적용한 선물세트 패키지가 식품업계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패키지에는 빵 상자에 흔히 쓰이는 ‘필름 코팅’을 없앤 대신 재활용이 쉬운 친환경 종이에 수성 코팅을 입혔다. 무엇보다 패키지에 점자로 제품명을 인쇄해 이목을 끌었다. 친환경과 유니버설 디자인(성별, 연령,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하는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미각제빵소 패키지를 탄생시킨 주역인 문순희 SPC 디자인 VMD팀 전임디자이너를 만났다. 문 디자이너는 “패키지를 디자인할 때 친환경 종이나 잉크 사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문 디자이너는 미각제빵소 패키지의 점자 인쇄 아이디어를 우연히 받은 ‘점자 명함’에서 얻었다. 그는 “대학생 시절 선거철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받은 명함에 점자가 찍혀 있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 빵을 선물 받은 사람들도 제가 명함을 받고 느꼈던 것처럼 긍정적인 충격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아이디어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일반 소비재 포장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인쇄가 있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문 디자이너는 “장애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이 ‘선물 받는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SPC삼립의 대표 제품인 호빵 제품에도 점자 인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PC는 최근 몇 년 새 친환경·유니버설 디자인을 자사 제품에 빠르게 적용하고 있다. 기존보다 단가가 높아 제조사 입장에서 선뜻 적용하기 어려운 친환경·유니버설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소속 디자이너들의 남다른 ‘사명감’이다.
SPC 내부에서 친환경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로는 이주현 SPC 패키지개발팀 전임디자이너가 꼽힌다. 이 디자이너는 자신을 ‘쓰레기 줍는 디자이너’라고 부를 정도로 환경보호에 적극적이다. 이 디자이너의 취미는 ‘플로깅’(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2021년 파리바게뜨 파운드케이크 등 선물용 빵 제품에서 플라스틱 일회용 칼을 빼고 선택적으로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도 이 디자이너다. 당시 허영인 SPC 회장이 플라스틱 칼 줄이기 아이디어를 보고받고 바로 실천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디자이너는 스티커와 라벨을 최소화하고 가능하면 재활용하는 소재를 선택한다. 이 디자이너는 올 하반기 출시를 앞둔 친환경 파리바게뜨 샐러드 용기 준비에 한창이다. 그는 “샐러드 용기 뚜껑을 ‘바이오페트’로 만들고, 매장용 식기도 플라스틱에서 나무·종이로 바꾸려고 검토 중”이라고 했다.
사탕수수·옥수수에서 추출한 식물성 원료를 30% 사용한 바이오페트는 일반 페트 대비 탄소 배출이 평균 20% 이상 적지만, 가격은 1.5배 비싸다. 그는 “원가 부담이 높지만, 전사적으로 친환경을 강조하고 있어 가격이 높아도 적극적으로 검토·적용하는 분위기”라며 “제품 포장에 들어가는 종이·플라스틱 사용량 자체를 낮추는 ‘포장재 경량화’도 함께 추진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바게뜨와 미각제빵소 외에 SPC 제품 중에서 이미 친환경 패키지를 적용한 사례가 많다. SPC삼립은 샐러드 브랜드 ‘피그인더가든’ 패키지에 바이오페트를 적용했다. 베스트셀러인 ‘삼립호빵’에도 친환경 포장재를 적용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