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암호화폐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조직을 출범하기로 한 데는 이원석 검찰총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이복현 원장의 금융감독원과 암호화폐 수사를 두고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서울남부지검에 가상자산합동수사단을 신설할 예정이다. 대검찰청은 오는 19일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 유관기관과 회의를 한 뒤 가상자산합수단의 규모와 권한 등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할 예정이다. 가상자산합수단은 ‘김치 코인’과 같이 가격 변동이 심하고 거래량이 적어 시세조종 범죄에 취약한 암호화폐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전해졌다.
가상자산합수단 발족은 검찰 내부에서도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늘어나는 암호화폐 관련 범죄의 수사 전문성을 높일 필요는 있지만 굳이 새 합수단을 만드는 것이 적절하냐는 반론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북부지검과 서울동부지검엔 각각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단장 유진승)과 보이스피싱범죄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호삼)이 있다. 가상자산합수단이 들어설 서울남부지검에도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 단성한)가 꾸려져 있다.
반대 기류에도 이 총장은 합수단 출범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20, 30대가 ‘영끌’ 투자 후 범죄에 휘말려 재산을 탕진하는데 수사기관이 대책 없이 지켜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이 총장의 생각”이라며 “암호화폐 관련 입법이 늦어져 생기는 문제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암호화폐 관련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 1일부터 ‘가상자산 연계 투자사기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대검찰청도 같은 날 조달청 나라장터에 ‘가상자산 범죄의 효율적 대응을 위한 검찰 통합체계 구축 방안 검토 연구’ 용역을 공고했다.
가상자산합수단 출범으로 서울남부지검의 영향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서울남부지검은 국회와 증권가가 밀집한 여의도를 관할하고 있어 굵직한 정치·경제 이슈를 주로 다룬다. 서울남부지검의 암호화폐 관련 수사 인력도 보강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이준동)는 최근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코인 투자 논란’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5월 발생한 테라·루나 폭락사태는 금융·증권범죄합수부에서 맡고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검사들 사이에선 당분간 서울남부지검을 거치는 게 일종의 ‘승진 코스’처럼 굳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