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에 사는 60대 주부 양모씨는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소식을 듣고 천일염 20㎏짜리를 3포대나 주문했다. 소금 값이 많이 올라 10만원 훌쩍 넘는 비용이 부담스러웠지만 주변에서 오염수 방류 관련 공포감을 호소하면서 양씨도 덩달아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소금을 김치냉장고에 가득 채워놓고 조금씩 먹으려 한다. 주변에 소금을 사재기하거나 공동구매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시기가 임박하자 천일염 가격이 크게 오르고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 오염 불안감이 일어 장기간 보관 가능하고 모든 음식의 기본 재료가 되는 소금이라도 미리 확보해두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설상가상 국내 주요 천일염 산지인 전남 신안 일대에 잦은 비가 내려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소금값이 급등하고 있다.
14일 신안군 천일염 생산업계에 따르면 천일염 20㎏ 한 포대는 3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본격적인 천일염 생산에 들어간 지난 4월 초 매매가가 1만2000원 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두 달 새 가격이 2.5배가량 올랐다. 가격 폭등에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조만간 3만원 선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소매시장에서 소금 매출은 폭등세에 가깝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의 최근 엿새간(6~12일) 천일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쓱닷컴에선 천일염 포함 전체 소금 제품 매출이 6배, G마켓에서도 3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천일염 최대 산지인 전남 신안 수협에서는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했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전부 소화하지 못해 지난 12일부터는 온라인 주문 접수를 중단했다. 신안군 수협에 따르면 이달 1~9일 천일염 판매량은 2000포대(1포 20㎏ 기준)로 지난해 6월 81포였던 것과 비교하면 2370% 급등했다. 신안의 비금농협 관계자는 “2개월치 주문이 밀려 있다”고 말헀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배출되면 바닷물이 오염될 수 있다는 ‘괴담’이 퍼지면서 미리 사두자는 수요가 단기간에 몰렸다. 여러 온라인 맘카페에는 “소금을 미리 사둬야 하는 것 아니냐” “오염수가 방류되면 소금 구매는 아예 포기해야 하는 거냐” 등의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일본이 방류 시설 시운전을 끝내고 올여름 본격 방류에 나설 경우 가격이 급등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은 이달 중 원전 오염수 방류 설비 공사를 마친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특별한 지적을 받지 않으면 여름부터 처리 과정을 거친 오염수를 바다에 배출할 계획이다. 오염수의 핵심 물질인 ‘삼중수소’ 예상 배출량은 연간 22TBq(테라베크렐) 수준. 이는 중국이 서해 등 자국 근해에 매년 배출하는 삼중수소(1054TBq) 48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천일염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어 ‘소금 대란’을 키우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6일 설명자료를 내고 4∼5월 전남 지역 강수일수가 22일로 평년(15.6일)보다 많아 생산량이 줄었고 판매량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천일염 가격이 큰 폭으로 뛴 데 비해 염전업계 수익성은 악화하면서 폐업하는 소금 농가가 느는 것도 가격 인상 요인이다. 국내 소금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신안군 염전은 재작년 1만2000여 곳에서 작년 850여 곳으로 급감한 데 이어 올 들어선 750여 곳으로 줄었다.
올여름에도 예년보다 많은 비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돼 천일염 가격은 당분간 오름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업계에선 소금값 추가 상승을 점친 유통업자들이 출하 시기를 미루면서 소금 품귀 현상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미 일부 중간 도매업자들도 사재기에 나서면서 소금 품귀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일부 업체에서는 벌써 ‘신안군 산지직송 천일염 주문이 폭주해 일시품절됐다’는 안내글이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안 한 염전 관계자는 “전국 각지에서 소금을 구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는데 남은 물량이 별로 없다”며 “다른 염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