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55)은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는 소와 양, 돼지를 키우는 농장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막내였는데, 집에 있는 책이라곤 성경과 요리책 두 권뿐이었다. 그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며 “책 없이 자라는 게 나쁜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키건은 17세에 집을 떠나 미국 뉴올리언스에 있는 로욜라대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아일랜드로 돌아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첫 단편집 <남극>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이후 20년 넘도록 그가 낸 책은 단 네 권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아일랜드 교과서에도 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고 명확하다. 적게 말하면서 많은 말을 한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키건이 레이먼드 카버, 앨리스 먼로, 윌리엄 트레버 같은 단편의 대가들과 비교되는 이유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지난 4월 그의 중편 <맡겨진 소녀>가 국내 출간되며 주목받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말없는 소녀’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는 제72회 베를린영화제 2관왕을 석권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