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신드롬’은 어떤 예술 작품을 본 사람이 충격과 감동으로 격렬하게 흥분하거나 심한 어지러움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불후의 명작이나 위대한 문화유산에 압도당했을 때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심장마비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2021년 4월 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폼페이 고고학 공원의 책임자로 취임한 뒤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폼페이 방문객 가운데 심장마비를 겪는 사람이 많고, 그중 일부는 치명적인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폼페이 방문객을 위한 응급 의료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매년 발생하는 600건 정도의 사건 가운데 약 20%는 심혈관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더운 날씨를 탓하곤 하는데요. 정말 그 이유 때문일까요?”
2021년 4월부터 폼페이 고고학 공원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가브리엘 주크트리겔 박사는 최근 독일에서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는 책 <폐허의 마법(Vom Zauber des Untergangs)>에서 폼페이를 찾은 방문객 가운데 상당수가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하고 있다고 전한다.
고대도시 폼페이에서 발굴되는 유적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문화유적과 고고학은 고통과 상실 또는 삶,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산 채로 묻힌’ 고대도시 폼페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놀라운 자료,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되는 생생한 문화유산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폼페이는 살아있습니다.”
서기 79년 8월 24일 낮 12시 무렵, 베수비오 화산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화산 쇄설물과 용암이 폼페이를 뒤덮었다. 건물들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압사당하거나 질식사했으며, 도시는 재와 화산암 더미 밑에 묻혀 버렸다. 170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재로 된 장막 아래 완벽하게 보존된 채 잠들어 있던 고대도시가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약 2만 명의 주민이 살았던 고대도시가 형체를 보존한 채 나타나자 전 세계는 경악했다. 화려한 저택, 빵집, 음식점, 목욕탕, 포장도로, 상하수도시설, 프레스코화 등 고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유적이 발견됐다. 그뿐만 아니라 화산 폭발 당시 죽음과 직면한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도 ‘석고’ 형태로 발굴됐다.
도망치다가 잿더미 아래 갇힌 어린아이, 뱃속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엎드려 있는 임산부, 사랑을 나누다가 함께 죽은 연인,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개 등 저자는 다양한 사진과 함께 ‘죽었지만 살아있는’ 고대도시 폼페이로 독자를 초대한다.
폼페이 고고학 공원의 책임자로서 저자는 매일 그곳을 누비며 2000여 년 전에 있었던 끔찍한 재난과 파괴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잠자리, 세워진 채로 굳어버린 접시들, 그들이 한때 즐기고 누렸던 다양한 예술 작품의 의미를 추적한다.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거의 그곳을 지금의 이곳으로 옮겨와 삶의 중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우리가 왜 고고학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설명하고, 고고학이 오늘을 살아가는 중요한 삶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낸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