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떨어질라"…강남·서초, '침수 위험' 알고도 눈 감았다

입력 2023-06-08 17:22
수정 2023-06-08 17:41

폭우에 상습 침수피해를 겪은 강남·서초구를 비롯한 서울 25개 자치구가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침수위험지구) 지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자치단체들이 건축 제한 등에 따른 민원을 우려해 지정을 꺼린 탓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역시 지정을 권고하지 않았다.

감사원이 8일 공개한 ‘도심지 침수예방사업 추진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행안부는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침수가 예상되는 지역을 자치단체가 침수위험지구로 지정하도록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 25개 기초자치단체 중 단 한 곳도 침수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들을 침수위험지구로 지정하지 않았다.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우 2011년과 지난해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하고 지하철역이 물에 잠기는 등 큰 피해를 입어 침수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이들 자치구는 부동산 가격 하락 및 건축 제한 등에 따른 민원 발생을 침수위험지구 지정을 하지 않은 이유로 들었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되면 자치단체가 직권으로 시설물 소유자·점유자 등을 대상으로 점검·정비 등 조치를 할 수 있다. 차수판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도 의무화된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됐더라도 주택·상가 등 침수 시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은 제외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18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지정된 369개 지구를 전수조사한 결과 142개 지구에서 주택·상가를 제외한 도로·하천만 위험지구로 지정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처럼 위험지구에서 제외된 지역에서는 침수방지시설 설치 조건 없이 168건의 건축허가가 나갔다.

이런 부실 관리는 실제 침수 피해로도 이어졌다. 2021년 8월 울산 남구, 작년 9월 경북 포항 남구와 충북 증평군은 실제로 침수예상지역이 위험지구 지정에서 제외돼 피해가 발생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자치단체가 침수예방을 위한 정비사업 계획을 낼 때 위험도 등에 따른 투자 우선순위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 사업 대상이 잘못 선정된 사례도 다수 드러났다. 올해 국비 지원이 들어가는 ‘풍수해 생활권 종합정비사업’을 재검토해보니 사업에 선정된 26개 지구 중 14개 지구는 투자우선순위가 낮은데도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행안부 장관에 대해 “자치단체가 침수위험지구를 지정·고시할 때 침수 예상지역이 정확히 반영되도록 전문가 검토를 충실히 하라”며 “침수 예상지역을 제외한 채 지구를 지정·고시한 때에는 침수 예상지역을 반영하도록 권고하는 등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를 요구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