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네이버 등 ‘e커머스 공룡’에 대항하는 제조사들이 가장 닮고 싶은 벤치마킹 대상은 나이키다. 2019년 11월 ‘탈(脫)아마존’을 선언한 나이키는 자사몰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대면(D2C)함으로써 2019년 12.2%였던 영업이익률을 2년 만에 15.6%로 끌어올렸다. 국내에서도 hy(옛 한국야쿠르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매장인 프레딧몰의 올 1~4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5% 증가하는 등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자체몰 강화에 공들이는 제조사프레딧몰은 hy의 대표 상품인 ‘윌’을 비롯해 샐러드, 밀키트 등을 판매하는 자사몰이다. 6일 hy에 따르면 2021년 700억원 규모였던 프레딧몰 매출은 지난해 1100억원으로 57.1% 증가했다. hy 관계자는 “올 상반기 추세를 감안하면 매출 2000억원대도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SPC삼립은 2021년 5월 인수한 베이커리 식자재 기업 간 거래(B2B) 전문 플랫폼 ‘베이킹몬’을 자체몰로 키우고 있다. 베이킹몬은 베이커리 및 카페에 버터, 밀가루 등 식재료와 베이킹 도구를 공급하는 플랫폼이다. 홈베이킹 재료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2021년 762억원이었던 베이킹몬 매출은 지난해 977억원으로 28.2% 증가했다.
SPC삼립 관계자는 “작년 초 바코드로 자동 검수작업하는 물류 체계를 도입해 작업 효율이 높아졌다”며 “당일주문 당일출고 원칙을 고수한 덕에 30만 명에 가까운 회원을 끌어모았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의 CJ더마켓, 대상의 정원e샵, 동원F&B의 동원몰 등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0~30% 늘어나며 순항 중이다. 탈(脫)아마존에 성공한 나이키식음료 기업 등 제조사들이 D2C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대형 유통 플랫폼에 종속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CJ제일제당과 쿠팡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에서 1000억원 이상 매출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것이 대형 식품업계에선 불문율처럼 됐다”며 “한 번 의존하게 되면 납품가 인하 압력 등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구매 데이터를 확보해 제품 개발 및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자사몰의 강점 중 하나다. 플랫폼을 거쳐 판매가 이뤄지면 고객 정보와 구매 양상은 모두 유통업체에 귀속되지만 자사몰을 활용하면 소비자의 취향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문정훈 서울대 푸드비즈랩 교수는 “소비자들은 좋은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며 “식품회사의 D2C 전략이 확대될수록 e커머스 시장에서 영원한 승자 지위는 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회사들이 자사몰로 소비자를 끌어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나이키처럼 중간 단계(총판, 도매점, 소매점 등)를 과감히 없애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뷰티업체만 해도 대리점 조직을 통한 판매가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대리점은 퇴직 임원들에게 일종의 보너스 형식으로 주어지는 혜택이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e커머스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D2C와 D2MP(쿠팡 등 마켓플레이스를 통한 판매)를 동시에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한킴벌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네이버 쿠팡 카카오를 통해 각종 혜택과 정보를 받아 보는 충성도 높은 고객을 95만 명(2021년 말 기준) 확보한 유한킴벌리는 이들을 자체몰로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식품 제조사 관계자는 “D2C 매출 비중이 클수록 유통 플랫폼과의 가격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