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의 상장 법인의 자기주식(자사주) 제도 개선 움직임을 두고 기업과 학계 등의 의견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모양새다. 학계에선 자사주 소각 강제, 보유 비율 규정 등까지 제안이 나온 반면 국내 최대 기업인 모임인 대한상공회의소, 상장사 모임인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은 “기업의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금융위 “기업들,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문제'”지난 5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서울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상장법인의 자기 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에 참석해 “시장에선 자사주에 대해 ‘효과적 주주가치 제고 수단’이라는 평가와 ‘대주주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평가가 서로 엇갈려 공존한다”며 “주주 보호와 기업의 실질적 수요를 균형있게 고려해 개선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현행 자사주 제도의 문제점으로 보고 있는 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인적분할 과정에서 대주주가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허용받아 신설 회사 지배력을 키우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이다. 이를 통하면 대주주가 추가 출연을 하지 않고도 경영권을 확대할 수 있다.
우호 기업간 자사주를 맞교환하면 사실상 본 기업의 의결권이 부활하는 효과가 나 일반 주주의 영향력이 희석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학계는 ‘자사주 강제 소각’ 등 제안이날 학계에선 기업의 자사주 매입·보유·처분 등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강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럿 나왔다. 자사주 처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세미나 주제 발표자로 나선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사주의 보유 한도를 설정하거나 강제 소각하록 하는 방안 △자기주식을 처분할 때 신주 발행과 동일한 절차를 적용토록 하는 방안 △자사주 맞교환을 금지하는 방안 △합병·분할 시 자사주에는 신주배정을 금지하는 등 주주 권리를 정지하는 방안 등을 언급했다. 시가총액 계산에서 자사주를 제외하거나, 관련 공시를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노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자사주 보유 비율을 법으로 일괄 규제하면 규제 탄력성이 매우 떨어지고, 보유 자체를 막는 것도 실익이 없다”며 “이때문에 자사주 처분 단계에 대해 규제를 만드는 것이 설득력이 높은 조치”라고 했다.
그는 “기업 분할시 자사주 기반 신주 발행 관련 메커니즘을 도입할 만 하다”며 “‘자사주 마법’ 방지책이 나올 경우 시장이 규제를 우회해 갈 수 있는 만큼 편법을 막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민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는 기업이 자사주 취득 목적을 바꿀 때 공시를 게을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정 공시를 강하게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자사주 취득과 관련한 목적, 처분 방식·시기 등을 빠르게 공시해야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자사주 보유량이 일정치를 넘어선 경우 이사회가 비중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등의 책임을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규모를 기업 시가총액에 합산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자사주는 비교법적으로 보면 아무런 권리가 없는데도 한국에서만 유독 인적분할시 신주 배정, 제삼자에 대한 자의적 매각 등 남용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가가 자사주 거래에 대해 세금을 매기다보니 시장이 자사주를 자본이 아니라 자산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가총액을 계산할 때 자사주를 포함하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라며 “미국은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시점에 기업 시총에서 그만큼을 제한다”고 했다. 이같은 경우엔 애초에 기업이 매입 자사주를 결국 소각하는지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자사주는 아무런 권리가 없고, 회계적으로도 자본이 차감되는 개념인 만큼 한국도 이같은 방향을 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사주 처분 등에 대해선 금융감독당국이 신주 발행에 준하는 통제를 적용하되, 기업이 임직원 보상에 자사주를 활용하는 현실적 수요를 고려할 때 등은 일정 부분 예외를 검토하는 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규정 이유 있어…기업 현실 반영해야’ 목소리도반면 자사주 보유·처분 등에 급격한 규제를 새로 적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자사주 제도가 기업의 임직원 관리, 정부의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 유인책 등과도 넓게 연결돼 있는 만큼 단순히 주주가치 제고만을 고려해 뜯어고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이한진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자사주 제도는 자본시장만이 아니라 기업 정책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분할 합병시 자사주에 대해 신규 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명확한 법무부 유권 해석에 따른 것”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집단 소유구조 투명화 등을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강력하게 유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유권 해석인 만큼 (주주가치만이 아니라) 기업 정책 측면에서도 고려할 바가 많다”고 말했다.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사주 취득 효과가 이익 배당과 실질이 같다면 거기에 준하는 규정과 해석론 등이 정비돼야 한다”면서도 “다만 현재 자사주 활용을 두고 부작용이 일어나는 이유는 규제가 기업의 신주 발행이나 경영권 방어 메커니즘을 지나치게 막아두기 때문인 만큼 (제도 개선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현행 규정이 자사주 취득·처분 등을 기업의 통상적인 재무 활동으로 자유롭게 인정하는 것은 외국과 달리 경영권 방어 수단이 부족한 국내 현실을 고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사주에 대한 소각이나 보유 한도를 강제한다면 회사의 자산이 감소하는 손실도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기업에 대한 재산권 침해와 위헌 소지까지 있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장사협의회도 비슷한 입장이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2011년 상법 개정 당시에 포이즌필 제도 도입 논의가 일었지만 당시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업이 자사주 취득·처분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을 근거로 도입이 무산됐다”며 “자사주 제도를 개정한다면 2011년에 제기된 사안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기업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은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황금주 등 기업 경영권 방어 수단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며 “당국은 이같은 글로벌 스탠다드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 "자사주 그간 문제 지적 많아…종합적 검토 할 것"금융당국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에 보다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김광일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이날 “그간 시장 전문가와 학계, 일반 투자자 등으로부터 자사주 관련 여러 문제점이 지적됐다”고 강조하며 “기업의 인적분할 등 자율적인 사업 재편 수요, 지배구조 측면에서의 영향 등도 충분히 고려해야겠지만 일반 주주의 권익 또한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그는 “시장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일반 주주의 관점에서 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