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은 지난해 9월 신라면 출고 가격을 10.9% 올렸다. 그 덕분인지 올해 1분기 농심의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6.9%, 영업이익은 85.8% 급증했다. 농심 주식을 산 사람에겐 기분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원재료비 상승을 구실로 가격을 올려 이익을 늘렸다며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많다.
국내외에서 그리드플레이션 논란이 일고 있다.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탐욕(greed)이 물가 상승(inflation)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품 물가상승률이 10% 넘는 유럽 일부 국가는 가격상한제, 기업 이익률 제한 등의 조치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리드플레이션 논란에는 시장경제의 가격 결정 원리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게 섞여 있다.
애플망고빙수는 왜 그렇게 비쌀까한 그릇에 10만원이 넘는 애플망고빙수 얘기로 시작해 보자. 서울 포시즌스호텔의 제주 애플망고 가든 빙수는 12만6000원이다. 작년 여름 9만6000원이었던 것을 3만원이나 올렸다. 뭐가 들었길래 빙수 한 그릇에 10만원이 넘는 것일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 보자. 포시즌스호텔은 왜 빙수 가격을 더 비싸게 받지 않을까.
포시즌스호텔이 애플망고빙수 가격을 15만원으로 올린다면 손님 중 일부는 서울 신라호텔의 같은 빙수(9만8000원)를 먹을 것이다. 서울 롯데호텔(9만2000원)이나 서울 웨스틴조선호텔(7만8000원)로 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포시즌스호텔은 해당 메뉴 가격을 다시 내릴지도 모른다.
시장경제에서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공급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은 하락 압력을 받는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겉으로 보기엔 기업이 마음대로 가격표를 붙이는 것 같지만 수요·공급의 원리로부터 자유로운 기업은 거의 없다. 제아무리 유명한 호텔이라도 가격을 올릴 경우 수요가 감소하고 경쟁 호텔에 고객을 빼앗길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한다. “가격은 기업의 탐욕과 상관없다”그리드플레이션 논란의 바탕에는 재화와 서비스의 ‘적정 가격’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제품과 서비스 원가에 약간의 이윤을 더한 수준에서 판매 가격이 결정돼야 한다는 관념이다. 그러나 수요·공급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장에서 가격은 ‘원가+α’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상품의 원가가 1만원이라고 해서 그 상품의 판매 가격이 1만2000~1만3000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가 1만원짜리 상품의 판매 가격은 10만원이 될 수도 있고 1000원이 될 수도 있다. 그 상품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얼마나 있는지가 원가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제 애플망고빙수가 비싼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빙수에 뭐가 들어가 있으며, 원재료인 제주산 애플망고 가격이 얼마인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빙수 가격을 뒷받침하는 것은 점심시간마다 줄 서서 대기하는 탄탄한 수요다. 미국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은 저서 <베이직 이코노믹스>에서 “상품의 객관적 가치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경제적 거래의 토대가 생겨날 수 없다”며 “판매자의 탐욕과 상관없이 시장 상황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했다. 규제 완화·경쟁 촉진이 최선물가 상승에 편승해 비용 증가 폭 이상으로 판매 가격을 올린 기업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원재료 가격이 상승할 땐 판매가격을 빠르게 올리고 원재료 가격이 하락할 땐 판매가격을 그대로 두거나 뒤늦게 내리는 일부 기업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가격을 통제하거나 이윤을 제한하는 정책은 물가 안정에 도리어 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이 원가를 절감할 유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익이 원가의 10%를 넘지 못하게 규제한다면 기업은 원가를 높이고 비싸게 팔수록 이익이 늘어난다. 원가 10만원짜리 상품을 11만원에 파는 것보다 원가를 20만원으로 높여 22만원에 판매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기업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의 폭이 제한된다면 위험 부담을 안고 투자와 혁신을 감행할 기업도 없어질 것이다.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개방해 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는 것보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좋은 방법은 없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