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영국 영란은행에 보관 중인 보유금(金) 104.4톤을 점검했다. 지난 1990년 보관을 결정한 이후 33년만의 첫 실사다. 한은은 2013년 이후 금 보유량을 늘리지 않고 있는데, 향후에도 신중한 접근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한은 외자운용원은 6일 이같은 내용은 '보유금 관리현황 및 향후 금 운용 방향' 자료를 배포했다. 한은은 금 104.4톤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량을 모두 영란은행에 보관하고 있다. 11~13kg 무게의 골드바 8380개다.
한은은 국내와 미국 뉴욕 연방은행, UBS 등에 나눠 보관하던 금을 지난 1990년 영란은행으로 모두 이전했다. 글로벌 금 시장의 중심이 런던시장이기 때문에 금 거래나 달러화 환전 등이 원활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금 대여를 통한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도 영란은행 이전의 이유로 꼽힌다. 뉴욕 연은 등은 대여 사업보다는 보관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과 차이를 보인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이 영란은행에 보관중인 금 실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말 현장을 찾아 205개의 골드바를 직접 점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대여 금을 제외한 한은 보유분의 3.05%에 해당한다. 200개는 사전에 지정해 영란은행에 통보했고, 5개는 당일 임의 지정해 보관상태를 확인했다.
한은 관계자는 "골드바 표면에 기록된 관리번호, 제련업자, 순도 정보와 장부를 비교하고 이와 동시에 표면의 긁힘, 실금 등 손상 여부도 동시에 점검하는데 모두 양호했다"며 "무게를 측정한 30개의 경우에도 모두 이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3개의 골드바는 제련업자 표기가 장부와 달랐는데, 이는 제련업자는 같지만 공장소재지가 다른데 기인한 단순 오기였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은 장부를 수정해 정보를 일치시켰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지난 2011~2013년 금을 90톤 매입한 후 10년간 현재의 보유량인 104.4톤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의 금 매입은 미 달러화에 대한 지나친 편중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해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 금 추가 매입에 나서지 않으면서 보유 비중은 낮은 상태다. 한은에 따르면 2022년 말 외환보유액 중 금 비중은 1%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다. 달러화 비중이 70%대로 가장 많다.
한은은 "일각에서 외환보유액 중 금 보유 확대가 긴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은 최근의 시장상황이다. 미 달러화 수요가 큰 상황에서 금 보유보다는 달러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상태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 한은의 판단이다.
금 가격이 전고점에 근접한 상황이라는 점도 투자대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 점으로 꼽힌다. 최근 금 가격은 온스당 2000달러 수준에 육박했는데 이는 2010년대 중반 1100~1300달러 내외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금 보유의 기회비용인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돌아선 것도 가격 상승 제약 요인이다.
더 큰 문제는 금의 상징성이다. 금은 외환보유액 중 최후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있다. 금까지 팔아야할 정도면 국가적 위기가 온 것으로 시장에서 받아들여진다. 한번 늘린 금 보유량을 쉽게 유동화하기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