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자립률 맞추고, 의무 부대시설 늘려야…"분양가 오를 일만"

입력 2023-06-04 18:21
수정 2023-06-05 01:22
“서울 아파트 재건축 사업 공사비가 보통 3.3㎡당 700만원대인데, 앞으론 기본 1000만원을 넘어간다고 봐야 합니다.”(중견 건설사 공사 담당 임원)

자재값과 인건비·금융비가 연이어 오르는 와중에 내년부터 ‘제로에너지 건축’이라는 정부 규제발 공사비 상승 압력이 가중돼 아파트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미 시행된 층간소음 기준 강화 및 입주자 사전 점검 규제와 맞물려 건설사가 원가 상승분을 고스란히 분양가에 전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재건축정비사업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이 반복되면서 입주 지연이 확산하고, 분양가는 치솟아 서민의 주거 불안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제로에너지’ 손도 못 댄 중소형 건설사4일 업계에 따르면 대형 건설사는 최근 제로에너지 의무화 도입 대응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잇따라 꾸리고 있다. 정부의 제로에너지 로드맵에 따라 내년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아파트는 제로에너지 건축물 5등급(에너지 자립률 20%)을 달성해야 분양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창호, 보일러, 조명 등의 단열이나 기밀 성능을 강화하는 패시브 기법을 통해 에너지 요구량을 줄여야 한다. 또 태양광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 시스템을 설치해 건물의 화석연료 소비량을 줄이는 액티브 기법도 병행해야 한다.

정부는 2018년 5210만t이던 건물 분야 탄소 배출량을 2050년엔 620만t으로 88.1% 줄일 방침이다. 건설 분야의 핵심 탄소 배출 저감 대책이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다. 국내 건축물의 75% 이상이 단열 성능이 저하된 준공 15년 넘은 노후 건물이어서 탄소 배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제로에너지 건축의 걸림돌로 비용을 꼽는다. 제로에너지 아파트를 지으려면 인력, 시스템, 공사기간 등이 추가로 요구돼 공사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5등급 기준으로 공사비가 기존에 비해 최대 35%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운용 인력이 적고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형 건설사는 초비상 사태다. 한 중소형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연구소에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지만 인프라가 열악한 중소형 건설사는 공사비 상승분조차 추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브랜드 인지도에서 밀리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라도 확보해야 하는데, 이러다간 아예 분양시장에서 도태될 지경”이라고 우려했다. 공사비 상승 부추기는 겹겹이 규제 자재값과 인건비 상승에 따른 공사비 급등이 주택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공사비 상승을 부추기는 규제를 쏟아내면서 주택 공급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 들어 시행된 층간소음 완화 규제와 지난해 도입된 전기차 충전시설 의무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주야간 층간소음 기준을 4dB(데시벨) 강화했고,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해 바닥 슬래브를 더 두껍게 시공하도록 했다. 또 100가구가 넘는 아파트에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의무적으로 마련토록 했다. 이 때문에 최근 2년 새 아파트 공사비가 최대 50%까지 급등해 시공사와 조합이 공사비 조정을 두고 갈등을 빚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노동조합 파업과 시멘트 등 자재값,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인상을 둘러싸고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며 “제로에너지 건축 등 각종 규제로 부담이 가중되면서 시공 계약 해지 사례가 급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가 상승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국 민간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 가격은 2018년 1114만원에서 올 4월 1599만원으로 높아졌다.

정부는 “건설사가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민간 건설사, 연구기관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제로에너지의 건축물 적용 기준 등을 논의하고 있다. 탄소중립 로드맵을 준수하되 중소 건설사도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준을 찾겠다는 취지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년 1월 1일부터 딱 잘라 시행해야 하는 건 아니고 내년 중 시작하면 된다”며 “업계가 준비할 시간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인혁/김은정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