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20세기 대통령을 민주·공화 양당에서 한 명씩 뽑는다면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제32대 대통령으로 재직한 민주당 행정부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제40대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행정부의 로널드 레이건을 들 수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의 특징이 있다. 당시 미국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레이건 역시 공산주의 소비에트연방 붕괴와 함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끝낸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루스벨트는 금융시장 혼란과 극심한 경기 침체, 그리고 이에 따른 대규모 실업 사태로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혼란에 빠진 대공황을 극복해 자본주의 경제를 살려낸 지도자였다. 레이건 역시 물가 상승과 경기 부진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부터 미국 경제를 구한 대통령으로 인식된다. 특히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직면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의 파고는 지금 다시 밀려오고 있기에 당시 그가 보인 경제정책과 리더십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2년 10월 전국에 라디오와 TV 생중계로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대통령의 가장 큰 책임은 국민을 국내외의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우리가 직면한 가장 최악의 적은 경제적인 이슈다. 미국적인 삶의 방식과 미국의 꿈이 서서히 침식되고 있으며 경기 침체와 실업이라는 비극에 직면하고 있다.”
그는 이 연설을 통해 당시 미국이 직면한 경제적 문제의 심각성과 국민의 고통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섯 개의 최우선 순위 정책을 제시한다. ①정부지출의 통제 ②예산균형 ③효율적이고 보다 경제적인 정부와 생산적인 민간 부문을 지향하는 규제 개혁 ④사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공 ⑤환경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과 이를 통한 생산 기반과 일자리 제공이다.
그런데 연설에 언급된 이런 방안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비용 증가 공급 충격에 대응하는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면한 대공황 때는 수요 부족에 따른 디플레이션과 이로 인한 극심한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총수요의 추가 창출이 중요했던 반면, 1980년대 레이건 시대는 정부지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제어하는 등 과도한 총수요에 따른 물가 압력을 덜 수 있도록 오히려 효과적인 긴축 정책이 필요한 시대였다.
다만 레이건의 연설에는 총수요 제어를 위한 긴축 정책만 들어있던 것은 아니다. 지나친 물가 압력을 줄이려면 긴축도 필요하다. 하지만 비용 증가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경기 부진은 이것만으로 제어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비용을 줄이고 경제의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 처방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생산 기반과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규제 개혁, 적절한 경제적 인센티브와 제도 마련이다. 바로 이런 현실 인식, 그리고 효과적인 정책 처방과 실행이 있었기에 레이건 취임 직전인 1980년 -0.3%였던 경제성장률은 1984년 7.2%까지 상승했다. 물가 측면에서도 취임 직전인 1980년 13.5%라는 기록적 소비자물가상승률에 시달리던 미국은 1988년 4.1%까지 안정화되며 인플레이션 역시 진정된다.
적절한 정책 처방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극복하며 결국 스태그플레이션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반면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 더욱 심한 경제적·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한 소련은 냉전에서 패배하며 해체 수순을 맞게 된다. 레이건이 이끈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승자가 됐기에 냉전이라는 안전보장을 향한 투쟁에서도 이길 수 있었다는 뜻이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고 안전보장을 지키는 출발은 결국 내부의 적으로부터, 특히 경제적 위기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과 함께 경제적으로 적절히 설계된 인센티브를 통해 효율적으로 경제활동을 이끈 레이건 정부의 경험과 리더십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효율적인 정부와 생산적인 민간 활성화를 지향하는 규제 개혁으로 강력한 미국 경제를 건설한 전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