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역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이유는 경영진이 미 중앙은행(Fed)을 너무 믿어서였다. 이달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미국 경제에 엄청난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인이다. 이 위험 요소는 경영진의 오판도, 소셜미디어도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촉발한 ‘뱅크탭’은 문제를 빨리 드러나게 한 매개체였을 뿐이고, 잘못된 경영 판단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어서다.
진짜 큰 위험은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은행 경영자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는 과정에서 우연히 드러났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지난해부터 Fed가 초저금리 시대를 끝내고 금리 인상에 들어갔는데도 SVB가 왜 적절한 위험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를 놓고 맹공을 퍼부었다. 현실과는 정반대로 SVB가 금리 하락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경영한 이유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포워드 가이던스의 명암이에 그레그 베커 전 SVB 최고경영자(CEO)는 Fed가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답했다. 베커 전 CEO는 2020년부터 2021년 말까지 Fed는 시장에 ‘저금리가 유지될 것이며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성적인 은행가라면 금리가 더 빨리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Fed는 이런 이성적인 대응을 독려해야 할 시장의 자율 기능으로 보지 않았다.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것이 Fed가 벤 버냉키 전 의장 시절(2006~2014년)부터 지금까지 ‘포워드 가이던스’를 정책 도구로 활용해온 이유다. 포워드 가이던스란 성명, 경제 전망, 연설, 기자회견 등을 통해 중앙은행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시장에 알려주는 것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시장이 기준금리 전망에 따라 행동한다”며 “포워드 가이던스가 시장 기대에 영향을 미친다면 추가적인 정책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중앙은행이 현재 경제 상황에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포워드 가이던스는 경제 지표와 상반된 방향으로 중앙은행의 정책이 결정될 수 있다고 시장 심리를 유도하기도 한다. 일례로 물가가 오르는데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신뢰 잃은 Fed이런 맥락에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대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파월 의장은 SVB가 고금리 시대를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않도록 유도했고, 미국 국채 가격 유지와 신용 경색 방지같이 원하던 결과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Fed의 신뢰도 훼손이다. 파월 의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은행 위기의 원인을 경영진의 오판이나 규제 미흡으로 돌린다면 Fed가 통화 정책에 대해 내는 의견을 믿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신뢰는 법정 통화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최근 은행 위기로 불거진 진정한 위험 요소를 찾는다면 바로 중앙은행의 신뢰 상실일 것이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Silicon Valley Bank’s Failure Is a Federal Reserve Success’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