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공개할 확장현실(XR) 헤드셋 ‘리얼리티 프로’에 정보기술(IT)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십억 명에 달하는 글로벌 팬클럽을 보유한 애플의 제품이 시장의 호응을 얻으면, 메타버스 생태계 전체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6년 만에 새 폼팩터 나온다
2일 관련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애플은 오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본사에서 열리는 세계개발자콘퍼런스(WWDC)에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포괄하는 XR 기기 ‘리얼리티 프로’(가칭)를 발표할 예정이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16년 만에 내놓는 새로운 폼팩터(제품 형태)다. XR 전용 칩셋과 10개 이상의 카메라, 8K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등이 탑재될 전망이다. 가격은 3000달러(약 400만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애플은 아이폰, 애플워치, 아이패드 등 새로운 하드웨어를 통해 새 시장을 개척했다. 이번 XR 기기가 메타버스 산업의 행보를 점칠 풍향계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애플의 동향에 가장 촉각을 세우고 있는 회사는 메타(옛 페이스북)다. 메타는 사명까지 바꿀 정도로 메타버스에 진심인 회사다. 수십조원을 투입해 2020년 ‘오큘러스 퀘스트2’, 지난해 ‘메타 퀘스트 프로’를 출시했다. 퀘스트2는 1000만 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메타버스 대중화’에는 이르진 못했다.
이 회사는 애플의 제품 공개에 앞서 신제품 스펙을 한발 빨리 공개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1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큘러스 퀘스트3(사진)를 소개했다. 전면 카메라를 통해 고해상도 컬러 혼합현실을 구현했다. 전작은 외부 화면을 흑백으로만 볼 수 있었다.
두께가 퀘스트2보다 40%가량 얇다는 점도 눈에 띈다. 가격도 499달러로 애플의 신제품 예상 가격보다 훨씬 더 저렴하다. 이 제품의 실물은 오는 9월 ‘커넥트 콘퍼런스’에서 공개된다. ○‘XR 생태계’ 확장되나
삼성전자도 XR 기기를 준비 중이다. 올해 1월 ‘CES 2023’에서 XR 기기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지난 2월 ‘갤럭시 글래스’ 상표를 출원한 데 이어 4월엔 특허청에 ‘갤럭시 스페이스’ 상표로 등록했다. 이르면 올해 말 관련 기기가 출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XR 시장에서 애플과 메타, 삼성전자 3강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메타버스의 대중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XR 시장에 집결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에 따르면 2020년 960억달러(약 127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XR 시장은 내년 3580억달러(472조원), 2030년에 1조5430억달러(2039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맥킨지는 지난해 6월 ‘메타버스의 가치 창출’ 보고서를 통해 “메타버스 시장이 2030년 최대 5조달러(약 6610조원)까지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고 내다봤다.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도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제한 없는 화면과 간편한 휴대성을 갖춘 XR 기기가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지금의 XR 기기는 일상생활에서 착용하기 어렵다. 고글 형태의 폼팩터를 안경이나 선글라스로 바꿔야 대중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콘텐츠 확대, 통신 속도 개선 등도 IT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올 하반기 XR 기기 시장이 스마트폰과 비슷한 경쟁 구도로 접어들게 되면 성능 개선과 가격 경쟁력 확보가 가속화할 것”이라며 “챗GPT 등 생성 AI로 한층 고도화된 기술과 접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