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트유 가격에 미국産 반영…원유시장 美 영향력 확대

입력 2023-06-01 18:07
수정 2023-06-02 01:30
국제 유가의 기준물 역할을 하는 북해 브렌트유의 가격 산정 과정에 최초로 미국산 원유 가격이 반영된다. 원유 수출을 늘리고 있는 미국이 국제 유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1일(현지시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플래츠가 집계하는 브렌트유 가격에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미들랜드 가격이 6월 인도분부터 반영된다고 보도했다. 브렌트유 가격에 유럽 이외 지역에서 생산된 원유 가격이 반영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플래츠는 실시간으로 북유럽 원유 시장의 거래 정보를 추적해 브렌트유 가격을 산정한다. 이 가격은 런던 ICE 선물거래소 등에서 원유 선물과 옵션 등 다양한 파생상품 거래의 기반이 된다.

브렌트유 가격에 미국산 원유 가격을 반영하는 건 세계 에너지 시장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4년 정점을 찍고 생산량이 급감하는 브렌트유가 세계 에너지 시장의 기준점으로 사용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유전 이름을 따 만들어진 브렌트유가 40여 년 동안 이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놀랍고도 위험한 일”이라며 “이번 산정 방식 변경으로 브렌트유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지, ICE 선물거래소가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퇴적암에서 추출하는 셰일 원유를 앞세운 미국이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원유 수출을 늘리는 것도 이번 결정의 주요 원인이다. 미국 원유 수출량은 10년 전 하루평균 13만4000배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하루평균 370만 배럴로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은 러시아산 대신 미국산 원유를 대거 수입했다. 브렌트유 가격에 WTI가 반영되면 국제 원유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WTI가 브렌트유 가격 산정에 사용될 경우 유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WTI의 가격이 브렌트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데다 가격 산정에 사용하는 원유량이 늘어날 경우 공급난으로 인한 가격 변동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감산을 놓고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빚기도 했다.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 회원국이 기습적으로 추가 감산을 결정하자 미 백악관은 “현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최근 국제 유가는 산유국들의 감산 결정에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5월 한 달 동안 WTI 가격은 11.32% 하락해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중국의 경제지표가 부진해지자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오는 4일에는 OPEC+ 장관 회의가 열린다. 일각에서는 산유국들이 유가를 떠받들기 위해 추가 감산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러시아 측은 이를 일축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