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간 미국 정부의 부도 가능성으로 금융시장이 뒤숭숭했다. 연초부터 예상이 나왔지만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지난 5월 초 정부 부채 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6월 1일에 부도가 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심각성이 증폭됐다. 정말 부도가 난다면 그 영향은 금융시장에 국한될 리 없으므로, 설마 하면서도 불안한 시간이었다.
미국의 부채 한도 문제는 잊을 만하면 반복된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정부 부채 한도 제도가 도입된 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정부의 빚은 계속 증가했다. 빚을 얼마 이상 얻지 못한다고 정해 놓은 부채 한도도 지속적으로 높게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빚은 연방정부가 내는데 부채 한도 결정은 의회 몫이어서, 특히 야당이 다수 의석을 가진 경우 부채 한도 조정은 난항을 겪게 마련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11년에는 재정 적자를 줄여야 부채 한도를 높여주겠다는 공화당의 요구로 갈등이 길어졌고, 결국 국가신용등급이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강등됐다. 이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잘사는 나라 중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정부 부채와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떠받치는 기둥들인데, 두 기둥 모두 위기에 처했다. 빚은 버는 것보다 많이 쓰려 할 때 생긴다. 정부 지출이 늘어나는 것에 복지 지출 증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증가 추세를 꺾기가 쉽지 않지만, 전 분야에서 제도를 정비해 단 1만원을 쓰더라도 지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단 한 명의 공무원 인력이 낭비되지 않도록 할 개혁도 절실하다. 모든 공무원은 법에 근거해 움직이므로 법 규제가 효율적이지 않으면 인력과 돈의 낭비는 불가피하다.
법에 명시돼 수립되는 ‘기본계획’을 예로 보자. 에너지기본계획처럼 가끔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정부의 기본계획들 말이다. 필자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기본계획이 본문에 포함된 현행 법률을 검색해 전수 조사한 결과, 중앙정부 차원에서 수립해야 하는 기본계획은 최소 375개다. 최소라고 한 이유는 일일이 수작업한 결과다 보니 누락한 것이 있을 수 있어서다. 또한 잘 알려진 에너지기본계획은 현재 근거법령이 없는 상태여서 375개에 포함되지 않았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주기는 5년이 가장 많고, 드물게 매년부터 3년이나 10년, 길게는 20년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각 부 중 기본계획을 세우지 않는 부가 없고, 산림청, 문화재청 등도 주기적으로 수립하는 기본계획이 여럿이다. 기본계획이 가장 많은 부는 해양수산부로 무려 46개나 된다. 국토교통부가 36개, 문화체육관광부가 35개로 그다음이다.
이 많은 기본계획이 모두 필요할까. 국가가 일정한 주기로 계획을 세워 끌고 나가야 하는 분야가 이렇게 많을까 싶다. 과거에는 필요했지만 이제는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닌 것도 있고, 375개 중에는 겹치는 부분도 상당수일 것이다. 기본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인데, 정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하다 보면 내용은 새롭지 않으나 표현을 바꾸는 데 귀한 인력이 쓰이는 일도 반복될 수 있다.
이런 ‘기본’의 범람은 언제 생겼을까. 범위를 좁혀 현행 법률 중 ‘기본법’으로 끝나는 법률만 살펴보자. 기본법만 해도 무려 75개다. 1966년 중소기업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노태우 정부까지 제정된 기본법은 8개였다. 김영삼 정부에서 7개가 제정되고, 김대중 정부에서 13개로 크게 늘었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16개가 추가됐다. 역대 정부 중 최다 증가다. 이명박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11개씩 더했다. 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도 각각 8개와 1개가 늘었다.
2020년부터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일할 인구가 줄어들면 민간이든 정부든 일하는 사람들이 더 스마트하게 일해야 한다. 민간은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효율화를 추진할 것이다. 문제는 정부다. 정부의 생산성 향상이 더뎌 정부 지출 비중이 커진다는, 경제학계에서 유명한 이론도 있다. 쓸데없는 일은 과감히 빼줘야 한다. 공무원 스스로는 절대 못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