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 클린턴 구애에…1000억 통 큰 투자한 한국 기업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3-06-02 07:59
수정 2023-06-07 09:54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은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에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많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점과 132억원(2019년 낙찰 당시 환율)이라는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낙찰 기록을 쓴 김환기 화백의 '우주'를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회장님, 저를 도와주십시오(Chairman, please help me)"김 회장은 사업 확장 외에도 '세아재단'을 설립하고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개교 6년 만에 북중미 아이티를 대표하는 교육시설로 자리잡은 세아학교는 글로벌세아의 선한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설이다. 세아학교 건립 배경에 김 회장을 향한 힐러리 전 장관의 강력한 구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2010년 1월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재건을 위한 각국의 지원이 이어진 가운데 김 회장도 어떻게든 역할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이후 아이티 지원을 위한 첫 회의가 그해 9월 미국 국무부에서 열렸다. 김 회장도 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힐러리 국무장관은 김 회장에게 먼저 다가가 "회장님, 저를 도와주십시오(Chairman, please help me)"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놀란 채 서있는 김 회장에게 힐러리 장관은 "우리는 세아가 어떤 회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며 "아이티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요청했다. 이후 김 회장은 고심 끝에 7800만달러(한화 약 1030억원)를 투자해 아이티에 공장을 세웠다. 직접적인 지원보다 공장 설립으로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을 돕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인연으로 힐러리 장관과 그의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10년 미국 국무장관 자격으로 아이티를 방문해 세아상역의 아이티 공장 오프닝 행사에도 참석했다. 힐러리 부부는 김 회장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귀빈으로 소개하고 재차 감사의 뜻을 표했다. 세아상역은 클린턴재단의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기부할 수 있는 자격도 취득했다.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학교를 세웠더니 폐허였던 마을에 활기가 띄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세아상역이 세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은 세아학교에서 한글과 태권도, 아리랑을 배웠다. 김 회장은 "패션 사업으로 어려운 국가를 도울 수 있어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아이티 재건사업을 하는 동안 김 회장은 클린턴 부부와 자주 만났다. 미국에 출장을 갈 때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이나 자택으로 김 회장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셨다. 글로벌세아가 최빈국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기여한 부분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 민간 기업이 미국 전 대통령을 만나는 건 여간해선 쉽지 않다. 미국 대통령 출신이 사기업의 이익에 불필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비판을 의식해서다. 때문에 미 전 대통령들은 가급적 기업인 미팅을 하지 않고, 하더라도 비공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클린턴 부부는 관례를 깨고 김 회장을 두 팔 벌려 맞이했다.한국 최고 미술 작품, 고국 품에 안기다2019년 1월 진행된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의 '우주'를 약 131억8750만원(구매 수수료 미포함)에 구입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미술계에서는 환호와 안도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한국 미술품 가운데 미술사적으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은 작품이 외국에 넘어가지 않게 돼 다행이라는 안도의 목소리와 소장자에 대한 호기심이 교차했다. 이후 지난해 7월 이 작품의 소장자가 밝혀졌다. 김 회장이 글로벌세아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갤러리 S2A를 개관했고 이 자리에서 '우주' 등 국내외 현대미술 대표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하면서다.


김 회장은 미술 분야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세계 2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김 회장은 "중학교 때부터 그림에 취미가 있었고 사업을 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미술작품을 구입해왔다"고 언급했다. 우주는 김환기 선생의 뉴욕생활 때 지인이자 후원자였던 김마태 박사가 소장하고 있었다. 한국 국민들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김 회장은 "우주는 김환기 선생의 작품을 대표하는 수작"이라며 "그런 작품을 국내로 가져오게 된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한 작품 컬렉터로서 필히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환기 작품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푸른색 전면점화인 '우주'는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폭화다. 작가의 말년 '뉴욕시대'에 완성한 이 작품은 127x254㎝의 독립된 그림 두 점으로 구성돼 전체 크기는 254x254㎝에 이른다. 김환기의 후원자이자 친구, 주치의였던 의학박사 김마태씨 부부가 작가에게 직접 구매해 40년 넘게 소장했으며 1971년 완성 이후 경매 출품은 크리스티 홍콩이 처음이었다. '우주'가 세운 최고가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김 회장은 "김환기 선생의 최고 작품을 국내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다 볼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라고도 했다. 김 회장이 세운 S2A는 국내외 주요 미술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며 미술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미술관엔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시리즈 중 국내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도 있다.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 인터뷰 3편이 이어집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