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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용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때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이 위기를 맞았다. 반도체 설계와 주문제작이 분리되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결과 TSMC·삼성 등 경쟁자에게 자리를 내줬다는 분석이다. 테슬라·퀄컴, 인텔과의 계약 포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현지시간) '강력했던 인텔이 진흙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인텔의 위기를 조명했다. WSJ은 팻 겔싱어 인텔 CEO를 인용해 "인텔의 문제는 주로 반도체 제조방식 전환에 실패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가 디자인한 반도체를 위탁제조하는 '파운드리'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인텔은 그간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인텔 임원들을 퀄컴과 테슬라가 인텔에 반도체 제조를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한 발 물러섰다고 전했다. 한 임원은 테슬라와의 계약이 무산된 것은 다른 주요 파운드리가 제공하는 광범위한 칩 설계 서비스를 인텔이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텔의 현실은 연일 주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경쟁사 엔비디아와 대조를 이룬다. 갤싱어가 취임한 2021년 1월 57.58달러였던 인텔 주가는 30일(현지시간) 29.99달러로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엔비디아 주가는 128.6달러에서 401.11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파운드리 시장 1·2위로 성장한 TSMC와 삼성에게는 파운드리 시장을 빼앗겼다. 현재 TSMC 시가 총액은 약 14조5000억 대만달러(약 625조원)으로 인텔의 시가총액 1250억달러(약164조원) 4배 수준이다. 과거 성공이 발목…'미국 내 반도체 공장 지원' 사활 인텔은 1980~90년대 PC용 반도체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당시 가정용 PC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중앙처리장치(CPU)를 인텔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러한 성공은 2000년대 들어 '승자의 저주'로 바뀌기 시작했다. PC용 반도체 시장에 안주한 나머지 급격히 성장하는 휴대폰용 반도체와 컴퓨터 그래픽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겔싱어는 이처럼 흔들리는 회사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인텔로 복귀했다. 그는 2001년 인텔의 첫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임명됐으나, 컴퓨터 그래픽 반도체 프로젝트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10년 뒤 사퇴했다.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 회사인 VMware에 입사해 8년 간 재직한 뒤 친정으로 돌아왔다.
겔싱어의 복귀 후 첫 지시는 '파운드리 사업 신설'이었다. 그는 취임 전부터 이사회에 화상 회의를 통해 이런 계획을 설명했고 이사들도 지지했다.
문제는 그가 돌아올 무렵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PC 판매가 호황이었다는 점이다. PC용 반도체 수요가 치솟았고 인텔의 수익도 치솟았다. 새 사업으로 활로를 개척해보겠다는 겔싱어의 계획도 꼬였다
인텔은 오는 2030년까지 삼성을 꺾고 파운드리 시장 2위에 올라선다는 계획이다. 다만 퀄컴, 테슬라 등 주요 고객들과의 계약이 결렬되며 이같은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지난해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매출은 8억9500만달러 규모로 전체 매출의 2%에 못미쳤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국내 반도체 생산 지원 정책'에 희망을 걸고 있다. TSMC, 삼성 등 주요 파운드리 업체의 생산 공장이 해외에 위치한 만큼 미국 정부가 자국 내 파운드리 시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2021년부터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