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3조에 팔고 韓브랜드 쇼핑 나선 나투라앤코

입력 2023-05-31 17:07
수정 2023-06-01 18:56
이 기사는 05월 31일 17:0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세계 4대 화장품 기업인 나투라앤코의 투자 담당자가 방한해 투자처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투라앤코가 지난달 화장품 브랜드 ‘이솝’을 매각한 뒤 한국 뷰티 브랜드를 인수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나투라앤코의 투자 담당자가 국내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와 만나 화장품 브랜드의 투자 리스트를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나투라앤코의 투자 담당자가 방한해 투자할만한 한국의 뷰티 브랜드 목록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국 뷰티 기업에 대한 관심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투라앤코는 이번에 매각한 ‘이솝’을 포함해 ‘더바디샵’, ‘나투라’ 등을 보유한 브라질 최대 화장품 기업이다.

나투라앤코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에는 영국 화장품 브랜드 ‘더바디샵’을 11억달러(1조4500억원)에 매입했고, 2019년에는 미국 화장품 그룹 ‘에이본프로덕츠’를 37억달러(3조9000억원)에 합병했다.

나투라앤코는 자금 여력이 풍부한 상황이다. 2013년 약 7100만달러(942억원)에 인수한 브랜드 ‘이솝’을 지난달 25억달러(3조2600억원)에 로레알에 매각하면서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나투라앤코는 이번 이솝 매각을 통해 부채를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글로벌 뷰티·패션 기업의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다. 로레알, LVMH 등은 국내 뷰티·패션 브랜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 쉐콰이아캐피탈과 LVMH 산하 사모펀드(PEF)인 앨캐터톤 등이 한국 브랜드에 투자했다.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이 주목받던 때 뭉칫돈이 몰렸다. 유니레버는 2017년에 카버코리아(AHC)를 3조629억원에 인수했고, LVMH의 PE엘캐터톤아시아가 아이아이컴바인드(젠틀몬스터)에 700억원의 프리 IPO투자를 진행했다. 2018년에는 로레알이 한국 브랜드 스타일난다를 6000억원에 인수했다.



2017년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이후 양국 국민의 정서가 악화되면서 해외 기업의 투자성적은 좋지 않은 편이다. 유니레버가 인수한 카버코리아는 2018년 매출 659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작년 4212억원으로 36.0% 감소했다. 로레알이 인수한 스타일난다 매출도 2019년 2695억원을 정점으로 작년 18.9% 줄어든 2184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수년 사이 K드라마를 시작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다시 한국 브랜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작년 1월에는 세콰이어캐피탈이 가수 지드래곤의 누나인 권다미씨가 운영하는 패션 기업 웰던의 지분 60%를 1000억원에 사들이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VC업계 관계자는 “아시아 시장에서의 확장성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이처럼 브랜드에 투자하는 VC나 PE는 드물다. 신세계그룹의 CVC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와 패션 플랫폼인 무신사 등이 브랜드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도다. 사모펀드(PEF)운용사 중에서는 아크앤파트너스가 지난해 신발 편집숍 카시나에 400억원을 투자했고, VIG파트너스가 샴푸 등 생활용품 브랜드 '쿤달(KUNDAL)'로 알려진 더스킨팩토리를 1000억원대에 매입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