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돈을 사용하지 않고 지혜를 사용하는 가라쿠리(カラクリ)"
일본에 가면 태엽을 감은 인형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중에는 전원 없이 차를 전달하는 인형도 있다. 인형이 들고 있는 잔에 차를 채워주면 인형이 스스로 손님에게 찻잔을 전달한다. 손님이 차를 마시고 잔을 인형에게 주면 인형은 찻잔을 들고 다시 원위치로 복귀한다. 일본에선 이러한 인형들을 '가라쿠리' 인형이라 부른다.
'실을 잡아당겨 움직인다'는 뜻의 동사인 '가라쿠루'가 명사가 된 가라쿠리의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양에서 들어온 태엽과 톱니바퀴의 원리에 매료된 일본인들이 이를 활용해 인형을 만든 게 가라쿠리의 시작이 됐다고 한다. 가라쿠리는 일본의 생산 현장에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별도의 에너지가 없이도 생산 현장에서 작업자가 수행해야 하는 일들을 기계가 대신해서 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일본에서 가라쿠리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업체는 다름 아닌 도요타다. 전기나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중력과 물체의 무게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도르래와 지렛대, 롤러와 경사면 등을 활용해 공정을 혁신한 것이다. 도요타에선 이를 '가라쿠리 개선'이라 부른다. 예컨대 편의점에서 음료수 매대에서 맨 앞의 캔을 집으면 경사의 원리로 자동으로 뒤에 있던 캔이 나오는 원리와 유사한 것이다.
가라쿠리 개선은 도요타뿐만 아니라 산하 수많은 협력사가 생산성 개선과 공정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차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지난 19일 방문한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TMEA 재팬은 가라쿠리 원리를 활용한 다양한 자동화 기계를 만들고 있었다. 이 회사는 도요타의 주요 협력사에 가라쿠리 개선 공정을 납품한다. 일반적인 공정 개선을 넘어 자동화 설비로 제작 현장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TMEA 재팬은 물류 라인에서 작업자들이 보다 편하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가라쿠리 개선 공정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무거운 짐을 올리고 이를 손쉽게 꺼내는 장비, 부품을 들면 스프링과 경사로로 자동으로 돌아가는 장비, 지게차 없이 발로 박스를 옮길 수 있는 장비 등이 대표적이다. 공통점은 무동력, 무전기로 모든 제조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중량물의 무게를 이용해 물체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구, 대차와 운반차를 자동으로 연결해 효율성을 높인 장치, 물류 라인에서 박스를 자동으로 내려오게 하는 장비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가격은 낮게는 100만원대부터 정교한 제품은 최대 수천만원에 달한다. 회사 관계자는 "가라쿠리 개선 공정은 별도의 현장 개선팀이 없는 생산업체들로부터 수요가 높다"며 "공정을 개발해 직접 제조 현장에서 사용하거나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받고 맞춤형으로 설계해 판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체의 원리에 집중해 진정한 '스마트공장'을 만드는 게 가라쿠리의 지향점"이라고 덧붙였다.
나고야=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