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기쁘게!’…‘한국의 하이디 부허들’ 여기 있네

입력 2023-05-29 09:42
수정 2023-05-29 09:43


우한나 작가(35)는 2019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오른쪽 신장은 쪼그라들고 왼쪽 신장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다행히 일상 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 어떤 질병 때문인지는 몇 달간 추적 검사를 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내 뱃속의 장기도 모르고 살았구나.’ 이후 우 작가는 장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는데, 이게 인기였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덕분에 올해 9월 ‘프리즈 서울’에서 한국 주요 작가로 소개될 예정이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즐겁게! 기쁘게!’는 우 작가처럼 촉망받는 한국의 30대 여성 작가 3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부허 전문가이자 미술사학자·큐레이터인 추스 마르티네스의 기획으로 마련된 전시로, 건물 2~3층에서 열리고 있는 스위스 여성주의 작가 하이디 부허의 전시에 한국 작가들이 화답하는 형식이다. 전시에 내포된 뜻은 심오하지만, 모르고 봐도 즐겁고 기쁜 감정이 들게 하는 전시다.

우 작가는 이번 전시에 ‘호접란7’과 ‘젖과 꿀-3’을 내놨다. 여성의 신체를 소재로 한 작품을 공개적으로 전시했지만 결코 불편하지 않고 아름답다. 우 작가가 신체를 소재로 했다면 동갑내기 박보마(35)의 설치작품 ‘결혼식의 영혼’은 사회구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결혼식에 쓰인 뒤 버려진 꽃들, 연단, 피로연에서 나온 잔해들을 모은 듯한 그의 작품은 ‘공장식 결혼식’을 비롯해 결혼에 관한 허례허식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박론디 작가(30)의 작품은 제목부터 특별하다. ‘나는 지치지 않아’로 시작해 ‘생각했다. 2023’으로 끝나는 제목의 길이는 공백을 제외하고서도 280자에 육박한다. QR코드 등으로 작품 제목을 읽고 나면 비로소 작품의 디테일이 보인다.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 특히 여성 직장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세 작가 모두 작업에 임하는 진지함과 가능성이 하이디 부허 못지 않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공부하지 않더라도 전시 제목처럼 그 자체로 관객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는 작품들이다. 6월 25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