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은 ‘양자로 들어감 또는 양자를 들임’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입양의 역사는 1950년대 6·25전쟁과 함께 시작돼 지금까지 25만여 명(해외 17만여 명, 국내 8만여 명)이 국내외 새 가정에서 삶을 시작했다.
2006년까지만 해도 해외 입양이 많았으나 2007년을 기점으로 국내 입양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세계 3위의 ‘아동수출국’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복지 후원국인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국외 입양을 보낸다.
국외 입양은 국적·인종·언어·문화 같은 태생적인 정체성을 모두 거스르는 일이다. 선택권이 없는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총체적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내 입양은 어떨까. 같은 하늘 아래 나를 낳은 부모가 살고 있다는 걸 알면 충격에 빠질 게 분명하다.
<훌훌>은 국내 입양을 다룬 소설이다. 고등학교 2학년 서유리, 택시 기사인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다. 엄마 서정희 씨와 지낸 기간은 고작 3년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너를 가슴으로 낳았다”며 입양 사실을 말하고는 얼마 후 사라져버렸다. 유리는 스스로를 ‘입양됐고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2층에서 지내는 할아버지와 최소한의 소통만 하는 유리는 2년 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이 집을 떠나 이름까지 바꾸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무겁지만 발랄하면서 흥미롭다엄마 서정희 씨의 죽음과 초등학교 4학년 연우의 등장으로 상황은 뒤바뀐다. 떠날 날만 기다리던 유리가 느닷없이 동생을 떠맡게 된 것이다.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았지만 자신과 같은 서씨 성을 가진 동생, 구구단도 못 외우고 학교에서 계속 문제만 일으킨다.
4년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시니컬하고 독립적이면서 매우 계획적인 유리의 일상을 뒤흔드는 연우의 등장,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소설이 매우 우울하고 갑갑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5년째 점심을 같이 먹으며 진한 우정을 나누는 주봉과 미희.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발랄하기 그지없다. 담임 선생님과 관련된 소문과 불량 학생들 소행까지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딱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 있어 흥미롭다.
소설은 약간의 추리 기법까지 가미해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택시 기사인 할아버지가 모자를 쓰고 나가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이유, 엄마 서정희 씨의 죽음에 연우가 연루됐다는 의심 속에서 벌어지는 소년재판 등 여러 스토리라인을 통해 풍성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리의 진짜 목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구성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뒤 자신을 버린 부모 앞에 나타나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것으로 추정되는 박스를 찾아내서 할아버지에게 “내 부모는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기도 한다.충격적인 사실과 직면하는 유리쉬는 시간에도 공부하는 모범생 세윤이 세 사람의 모임에 들어온다. 유리는 어느 순간 세윤이 베이비박스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에 괴로워하는 세윤에게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만, 유리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미 세윤은 유리가 서정희 씨에게 입양된 충격적인 과정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직면한 유리는 아연실색하고 만다.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유리를 돌보면서도 애정 표현이 전혀 없었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작은 반응에 감동하며 무심한 듯 정성을 다하는 유리, 따뜻한 돌봄으로 점차 천진한 아이로 돌아오는 연우가 주는 감동이 크다.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는 친구들의 우정도 든든하다.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며 독립을 꿈꾸던 열여덟 살 유리가 오히려 사람들과 점점 견고하게 연결돼간다. 혈연관계가 돈독한 우리 사회에서 할아버지와 유리, 연우가 가족이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우정은 가족애 못지않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입양이라는 묵직한 소재에 상당히 자극적인 사건이 이어지지만, 절제와 폭발성이 공존하는 유리의 사랑이 소설 전체를 안정적이면서 흥미롭게 만든다. 제12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은 <훌훌>을 읽으며 가족의 의미, 우정의 힘을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