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영원한 이별이다.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은 인류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방식에는 문화마다 편차가 있다. 사후세계를 지상 세계의 연속선상에서 본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어 시체를 보존했고, 영혼을 하늘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여긴 티베트에선 조장(鳥葬)이 성행했다.
한반도는 어땠을까.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 다시래기는 출상 전날 상갓집 마당에 모여 민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당 놀이에서 유래했다. 여기에선 성적(性的)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아기를 출산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선조들은 이별의 아픔을 받아들이면서도 해학을 통해 망자를 위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통은 3~6세기 삼국시대에도 존재했다. 오는 5월 26일부터 10월 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에선 고대 가야와 신라의 장송 의례와 관련된 유물을 소개한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5일 기자들과 만나 "선조들이 무덤에 넣은 상형 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로부터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고통과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엮어냈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국보와 보물 15점을 포함해 인물, 동물, 사물을 본떠 만든 332점의 토기를 선보인다. 이 중 97점은 1926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주 황남동에서 수습됐다. 출토될 당시 유물들은 바스러져 있었다. 1999년부터 20여년 간 복원과정을 거쳐 토기 뚜껑 위에 하나의 장면으로 붙여냈다. 이번 전시에서 온전한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크게 1부의 상형 토기와 2부의 토우장식 토기로 나뉜다. 상형 토기는 특정 사물의 모습을 본떠 흙으로 빚은 그릇이다. 3세기부터 경주 덕천리를 중심으로 장송 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모양 토기'가 대표적이다. <삼국지>의 '위서동이전'에 "변진(弁辰·가야의 전신)에서는 장례에 큰 새의 깃털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하늘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새를 본뜬 토기를 무덤에 넣음으로써 영혼이 하늘에 이르길 기원했다.
이어지는 2부는 토우장식 토기를 다룬다. 5㎝ 내외로 정교하게 빚은 장식이 토기의 옆면과 뚜껑에 붙어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상미 학예연구사는 "여러 사람이 공동 의례를 치르거나 줄지어 행진하는 것을 표현한 장식을 눈여겨보라"고 했다. 이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심지어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을 떠나보낸 상실감을 해학으로 극복하려는 의식이 성행했음을 보여준다.
특별전에 공개된 유물들은 당대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학술적인 가치도 있다. '바퀴 모양 토기' '배 모양 토기'에선 당대의 운송 수단을 짐작할 수 있다. '집 모양 토기'는 건축물의 외벽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 재현했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국보 '말 탄 사람 토기'를 통해 고대 신라의 의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죽음의 아픔을 마냥 희화화하진 않았다.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마무리 부분의 '죽음의 순간을 지키는 사람' 토우다. 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망자의 위에서 머리를 감싸고 슬픔에 잠긴 인물을 표현했다. 이 학예사는 "유물의 전체적인 구도나 머리에 쓴 두건을 보면 '동양의 피에타'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