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미국 쏠림' 너무 심해"…美 거래소, 유럽 개척 나선다

입력 2023-05-25 09:13
수정 2023-05-25 09:15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내년 초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유로넥스트 등 현지 거래소 인수에 나선다. 유망한 유럽 기업들의 현지 상장을 유도해 기업공개(IPO) 자금의 미국 쏠림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2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CBOE는 유로넥스트, 런던증권거래소(LSE), 나스닥 퍼스트 노스(북유럽 증권거래소), 도이치뵈르세 등 유럽의 주요 거래소들을 사들일 계획이다. 이 거래소들은 유럽 현지에서 IPO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내년 초부터 유럽 기업들이 현지 CBOE에 상장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개시하는 것이 목표다. CBOE를 운영하는 ‘CBOE 글로벌 마켓’의 글로벌 상장 부문 책임자인 조스 슈미트는 FT에 “자본 형성 관점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기업들의 상장을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유럽은 우리가 집중하고 싶은 지역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다수의 유럽 신생 기업이 세계 증시의 ‘메카’와도 같은 뉴욕증시로 몰려 가면서 유럽 IPO 시장은 가뭄 상태에 가깝게 메마른 상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IPO 최대어로 꼽혀 온 영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이다. 이 기업은 애초 나스닥과 LSE 두 곳에 동시 상장할 계획이었지만,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사임을 계기로 영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미국 단독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밖에 도박업체 플러터(Flutter), 글로벌 건축자재 업체 CRH 그룹, 특수 배관 및 가전제품 유통업체 퍼거슨(Ferguson) 등 다수 영국 기업들이 유럽 증시를 등졌다. 그 결과 유럽 IPO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 집계에 따르면 유럽 기업들이 올해 들어 현재까지 IPO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29억달러(약 3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9억달러)보다 10억달러가량 줄었다.



CBOE는 이미 영국과 네덜란드에 지사를 두고 있다. 유럽 최대 규모의 금융 상품 유통 시장도 CBOE 관할이다. 유럽 주식 거래 시장 내 점유율은 25%로, 24% 수준의 유로넥스트와 맞먹는다. 유로넥스트는 당국의 규제 완화 전까지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다만 공모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는 평가다. CBOE는 홈페이지에 기업 상장 전담 인력 공고를 올리는 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CBOE는 캐나다 거래소 ‘네오’를 인수한 뒤 약 60개 기업을 상장시키는 성과도 냈다.

슈미트 책임자는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성장 초기 단계의 기업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며 “기존 거래소들에선 볼 수 없는, 성장 기업들의 성공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CBOE의 진입으로 유럽 기업들의 IPO 환경이 한층 개선될 수 있으리란 전망을 내놨다. 오토노머스리서치의 이안 화이트 분석가는 “Cboe는 유로넥스트와 힘겨운 점유율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기업들은 자사의 시장가치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새 거래소보다 안정적인 기존 거래소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경쟁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상장 관련 비용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며 “유로넥스트가 수수료를 두 자릿 수로 올린다거나 할 경우 기업들에겐 대안이 생긴 셈”이라고 평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