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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국제 금융 시스템에 묶여 있는 300조원 가까운 러시아 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산 동결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 창출된 이자까지 러시아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융 제재를 한껏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관리들이 전날 만나 유로클리어에 저장돼 있는 러시아 자산에서 발생한 이자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유로클리어는 세계 최대 국제증권예탁결제기관이다. 국내외 채권, 증권, 파생상품 및 투자펀드의 국경 간 거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본사는 벨기에 브뤼셀이며, 전 세계 90여 개국 금융기관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벨기에 정부에 따르면 서방국들의 대러 제재로 인해 현재 유로클리어에는 러시아 자산 1966억유로(약 279조원)이 동결돼 있다. 이 중 1800억유로가 러시아 중앙은행 소유다.
유로클리어 계좌에 보관된 자산에선 이자수익이 발생한다. 유로클리어는 보관된 현금을 재투자해 수익을 불리는 등의 방식으로 신용 위험을 최소화한다. 고금리 상황과 더불어 전방위적 제재로 이례적인 규모의 러시아 자산이 동결됨에 따라 유로클리어는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다. 올해 1분기 기준 제재 대상에 포함된 러시아 자산에서 창출된 이자는 7억3400만유로(약 1조438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클리어에 보관된 러시아 자산 자체가 아닌, 이자수익만 떼어내 활용하는 것이 EU의 구상이다. 동결된 자산에서 나온 이자는 소유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사안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FT에 “이자 활용 방안은 그간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금융기관들마저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며 “우크라이나를 돕는 일은 가망이 있다”고 전했다.
일부 EU 관리들은 룩셈부르크 소재 국제예탁결제기관인 클리어스트림에 묶인 자산을 포함해 더욱 넓은 범위에서 러시아 자금을 이 같은 방식으로 전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글로벌 금융 환경에 미칠 영향과 법적 문제들을 고려해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2022년 기준 35조6000억유로(약 5경원)의 자금을 굴리는 유로클리어의 움직임은 국제 금융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관리자’ 수준에 머물러 온 유로클리어의 역할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EU 관리들은 다음 달 말 예정된 회의에서 동결된 러시아 자산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활용 계획을 제시할 방침이다. EU 집행위 측은 “글로벌 파트너들과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법적, 기술적으로 복잡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한편 벨기에는 유로클리어에 저장된 러시아 자산에서 나온 세금 수입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인도적 지원과 난민 구제에 사용하겠다는 별도의 계획을 밝혔다. 벨기에 정부는 러시아 자산으로부터 올해 최소 6억2500만유로(약 8888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