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차가운 학문이다. 보편적 법칙으로 만물의 이치를 설명한다. 물리 법칙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분자, 원자, 전자 등 미시적인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물리학 책을 앞에 둔 비전공자의 머리는 뜨거워진다. 외계어 같은 방정식과 암호 같은 주기율표, 도통 와닿지 않는 도표 탓이다. 두뇌를 구성하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에 과부하가 걸린다. 도중에 책을 내려놓는 경험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다.
이 묘한 간극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 최근에 출간됐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은 원자에서 인간까지, 물리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았다.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따온 제목이 암시하듯,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인잡'에 출연하며 과학 지식을 쉽게 설명해온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단독 저서로는 5년 만에 내놓은 신간이다.
"물리학자로서 세상을 전부 이해하고 싶었지만, 세상을 이해하려면 결국 물리를 넘어 다양한 학문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책은 저자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학생 시절 그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문학이나 철학, 예술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물리학만 가지고도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소위 '물리 제국주의자'가 돼 갔다고 말한다.
만물이 원자로 구성된 건 사실이지만, 원자만 가지고는 만물을 설명할 수 없었다. 118개의 원자 이름이 나열된 주기율표를 들여다본다고 세상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저자는 모든 것을 물리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멈췄다. 오히려 원자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각 단계를 서로 다른 층위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 과정을 꿰뚫는 단어가 '창발(創發)'이다. 단계마다 새로운 차원의 논의가 튀어나온다는 뜻이다. 먼저 원자를 설명하기 위해선 물리학이 필요하다. 원자가 모여 분자를 이루고, 분자는 물질을 구성한다. 이런 물질 중 일부는 생물이 된다. 생물이 광합성이나 세포 호흡 등 작용을 거쳐 에너지를 생성하는 층위에선 화학이 창발한다. 생명체들이 경쟁하며 자기 유전자를 복제해 대를 잇는 과정엔 생물학이 관여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책의 논의는 인간과 문명으로 확장한다. 서로 전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허구적 상상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꾸린다. 사회 역시 개별 인간이 모여 창발된 새로운 시스템인 셈이다. 종교, 사랑, 신뢰 등의 개념들은 인간의 원자 구조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호모 사피엔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인문학이 필요하다.
책은 원자로 시작해 원자로 끝난다. 원자에 대한 기초 개념을 서술한 1~2장을 꼼꼼히 읽고 출발해야 한다. 다행히 그 과정이 고되지 않다. 원자를 구성하는 원자핵과 전자를 '원자 호텔'과 각 방 객실의 투숙객으로 비유해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