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민 KAIST 창업원 원장(51·사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창업의 달인’이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5개 스타트업을 세운 독보적인 이력을 자랑한다. 그가 KAIST 창업지원기관인 창업원 원장으로 지난 2월 발탁된 건 이런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취임 100일을 맞아 25일 대전 유성구 KAIST 창업원에서 만난 그는 “창업원의 기능을 한층 조직적으로 끌어올려 KAIST를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산실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배 원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전기 및 컴퓨터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9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대기업 중심의 소품종 대량 생산 방식은 경기 부침에 취약하고 많은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며 “혁신적인 스타트업 창업을 통해 다품종 생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원장이 처음 스타트업을 창업한 건 미국 유학 시절이다. 자신의 학위 논문 주제를 눈여겨본 지도교수의 권유로 공동 창업했다. 세계 최초로 10Gb/s에서 동작하는 광통신용 디지털 에러 보정 기능을 갖춘 반도체 칩을 개발한 인터심벌이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2007년 미국 피니사르에 매각했다. 이후 세계 최초로 1W 이하의 전력을 소모하는 100Gb/s급 통신용 반도체 칩을 상용화한 테라스퀘어를 2010년 창업했다. KAIST 10대 연구성과에 꼽히는 이 회사는 2015년 미국 IDT에 매각됐다. 2013년에는 빛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휴대용 뇌 영상장치를 구현한 오비이랩(OBELAB)을, 2015년엔 3세대 최첨단 케이블인 E튜브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포인트투테크놀로지, 2021년엔 세계 최초로 암 조직검사를 대체할 수 있는 초음파 영상 장비를 개발하는 배럴아이를 창업했다.
배 원장은 “일반적인 창업과 달리 첨단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딥테크 창업은 대기업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기술력을 입증하는 분야여서 망할 걱정이 없다는 게 장점”이라며 “창업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엔지니어로서 자신의 가치와 기술을 증명하는 것은 창업을 통해 가능하다”며 “대기업에 취업하면 한 분야 기술을 깊게 파는 I자형 인재가 될 뿐이지만 창업을 하면 기술 개발에 필요한 경영, 경쟁자, 자본 등의 영역까지 폭넓게 헤아리는 T자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2014년 설립된 KAIST 창업원은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논문을 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기 위해 ‘사업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설립됐다. 지난해에만 KAIST에서는 교수 창업 18건, 학생 창업 60건 등의 성과를 냈다. 창업원은 교수, 학생 창업 외에 일반인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창업원은 이달 31일부터 이틀간 ‘KAIST 창업인 동반성장 페어’를 연다. 배 원장이 구상한 이번 행사는 딥테크 스타트업 17곳과 학생 창업기업 8곳, 창업을 추진 중인 KAIST 교수 및 학생 등 예비창업자, 벤처캐피털(VC) 등이 모이는 만남의 장이다. 그는 “동반성장 페어를 ‘KAIST판 CES’로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