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인기를 실감하냐”고 인공지능(AI)에 물었습니다. “자신은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니, “AI는 언제나 개선돼야 할 점이 있기 때문이다”는 능숙한 답을 내놓습니다. AI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의 대화형 플랫폼에서 기자와 AI가 나눈 대화입니다. AI는 모든 것을 대체할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대화에 언급된 ‘개선 작업’마저도 사람이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만난 이세영 뤼튼 대표의 최우선 관심사는 역시 ‘사람 뽑기’에 있었습니다. “채용에 시간 40%를 쓴다”는 그의 시야를 통해, 초거대 AI 응용 시장의 미래와 각광 받는 새로운 직무를 알아봤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 채용합니다. 최대 연봉은 1억원입니다.’
지난 3월, 한 채용공고가 AI 업계 이목을 끌었다. AI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가 직무명도 생소한 프롬프트 엔지니어 모집 소식을 알리면서다. 뤼튼 측은 공고에 경력사항은 무관하며, 생성 AI에 대해 관심이 많고 창의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인물을 찾는다고 썼다. 명목상 특별한 허들이 없던 셈이다. 채용절차는 막바지에 접어든 단계로, 최종 선발자가 어떤 ‘스펙’을 지녔을 지는 다른 스타트업에서도 관심이다.
이세영 뤼튼 대표는 “해당 직무를 체계화할 필요성이 내부에서 대두되고 있었다”며 “AI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AI 심리학자’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와 함께 다양한 초거대 AI를 섞어낼 수 있는 ‘LM 옵스(Large Language Ops)’ 직무 채용을 늘리고, 일본 현지 서비스 기획 경험을 갖춘 인력을 흡수해 뤼튼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초거대 AI들 섞어 ‘22억 단어’ 만들었다
뤼튼이 사업을 펼치는 생성 AI 분야는 격전지로 묘사된다. 인간의 지능에 해당하는 AI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늘린 ‘초거대 AI’는 국가 간 패권 싸움으로 번질 정도다. 미국 오픈AI사의 ‘GPT’ 시리즈나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등 초거대 AI 개발은 사람의 뇌를 만드는 작업과 같다. 경쟁이 심화될수록 중요해지는 영역은 응용 부문이다. 초거대 AI가 개발되면, 이를 활용해 서비스를 내놓고 생태계를 대신 확장해 줄 제3의 업자가 필요하다. 뤼튼과 같은 업체가 인력을 늘리고 있는 이유다.
다만 이런 업체들은 특정 초거대 AI에 종속해 서비스를 펼칠 요인이 없다. 오히려 여러 초거대 AI를 모아 국가별, 언어별로 더 빠르고 정확한 결과치를 제시하는 것이 이득이다. 실제로 뤼튼은 7개 초거대 AI를 모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문서 작성 지원 서비스 ‘뤼튼 에디터’다. 글을 쓰면 AI가 문맥을 파악해 문구를 완성해주는 서비스인데, 이를 중심으로 플랫폼 전체서 생성된 단어가 지난 3월까지 22억 단어가 넘는다.
이 대표는 초거대 AI를 섞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문서 작성은 초거대 AI 사용 방식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사례였고, 본래부터 뤼튼 자체를 플랫폼으로 만들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버전인 ‘뤼튼 2.0’은 챗봇 형태의 ‘일반 모드’, 검색이 가능한 ‘검색 모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뤼튼 에디터 등이 제공되고 있다. 다만 내부에서 중점을 두는 서비스는 일반 이용자가 뤼튼의 AI로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 올리는 ‘스토어’나 외부 프로그램과 연동시키는 ‘플러그인’이다. 스토어에는 ‘유튜브 채널명 생성 프로그램’이나 ‘블로그 글 생성기’ 등 이용자들이 개발한 각종 프로그램들이 업로드돼 있다. 플러그인은 출시가 임박한 상태인데, 배달·패션·식당 예약·구직 등 외부 서비스와 뤼튼 AI를 연동시킬 예정이다. 과금을 도입하지 않는 이유도 플랫폼에서 수수료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할 목적에서다.
연봉 1억 프롬프트 엔지니어·LM 옵스 ‘타깃’서비스에는 다양한 직무가 요구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 공고가 올랐던 뤼튼의 채용 홈페이지엔 현재 18개 직무가 올라와 있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많은 수다. ‘공고에 없는 직군을 제안하거나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서 지원해도 된다’는 문구도 있다. 이 중에서도 이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무는 LM 옵스 엔지니어다. 그는 “뤼튼은 한국어를 잘 하는 모델, 영어를 잘하는 모델, 빠른 모델, 싼 모델 등 최초부터 두 가지 이상의 생성 AI 모델을 동시에 써야 했다”며 “각 모델의 동작 방식부터 프롬프트 길이의 한계 극복, 비속어 필터링 등 ‘미들 레이어(Middle Layer)’ 개발을 담당할 팀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각종 AI 모델을 섞어 비용과 속도를 최적화하는 것은 뤼튼이 외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또 한 가지 핵심은 프롬프트 영역이다. 이 대표는 “초창기부터 국내 최고 역량의 인력을 흡수하려고 파격적인 연봉 조건을 내걸었다”고 말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국내선 직무 범위는 고사하고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업이었다. 대화형 AI에게 질문을 입력하며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해외 업체도 이제 막 채용을 늘리는 추세다. 앞서 미국 스타트업 앤스로픽은 프롬프트 엔지니어 연봉에 약 4억원을 내걸기도 했다.
뤼튼 입장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초거대 AI 모델이 잘 섞이도록 돕는 필수 직무다. 때문에 초창기 멤버인 12명이 모두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여기엔 AI 개발자도,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있다. 이 대표는 “서류 전형에 AI 엔지니어부터 심리학, 철학 전공자까지 다양한 이들이 몰렸다”며 “지원자는 100대 1에 달했다”고 했다. 채용 과정은 서류와 면접 2회로 일반적이지만, 사전 과제로 지원자들이 AI에게 질문한 결과를 포함시키도록 했다. 내부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이들은 이번 채용 절차에 투입돼 과제를 평가하기도 했다. 선발된 이들은 각 서비스 조직에 배치된다. 모든 팀에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존재하게 되는 셈이다. “생성 AI, 협력자 모으는 ‘도천지장법’ 시기”
채용은 어느 스타트업에게나 녹록지 않다. 대표 입장에선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대표는 “창업 초기에 함께한 이들의 직무가 다양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는 연세대 문헌정보학과에 재학 중인 현직 대학생으로, 2년 만에 직원 40명 규모의 스타트업 대표가 됐다.
창업은 고교 시절부터 관심이었다. 2학년 때 KBS ‘도전 골든벨’에서 최후의 1인에 올라 상금 3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을 기초자금으로, 고교생 대상 논문 발표행사인 ‘한국청소년학술대회’를 직접 만들었다. 첫해에 300명이 참석한 대회는 해를 거듭하며 13개국 3000명의 학생이 참여할 정도로 커졌다. 혼자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사무국을 두고 40명의 팀원, 160명의 자원 봉사자와 함께 일했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콘퍼런스 플랫폼을 개발해보기도 하고, 1억원이란 빚도 져 봤다. 이 대표는 “사실상 창업을 경험한 느낌”이라 했다.
코로나19가 찾아오자, 사무국 팀원들과 함께 다른 아이템을 고민해야 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7명이 남았다. 조직적으로 일했던 만큼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까지 보직도 다양했다. 처음엔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을 AI로 가르쳐보자는 취지에서 AI 글쓰기 선생님인 ‘뤼튼 트레이닝’을 만들었다. 그러다 생성 AI의 ‘붐’이 예측되면서 정식으로 초거대 AI 응용 분야를 겨냥했다. 이렇게 나온 서비스가 지난해 1월 출시한 ‘뤼튼 1.0’이다.
뤼튼의 서비스 범위가 확장하면서 직원 수는 최근 6개월만에 2배가 늘었다. 이 대표는 “시간의 40%는 채용에 쓰는 것 같다”며 “사실 필요하지 않은 직무가 없을 정도”다고 했다. AI 업계는 특히 인재풀이 양극화됐다는 분석이 많다. 고학력과 경험을 갖춘 고급 인재는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뤼튼이 직원 처우를 올려야 했던 이유다. 뤼튼은 지난해 11월 프리시리즈A를 유치했고, 현재도 시리즈A 투자금을 모으고 있다. 자금이 쓰이는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인건비다. 그럼에도 채용 규모는 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도 휴대폰 바탕화면이 존경하는 멘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책 ‘제곱 법칙’ 문구다”며 “여기서 언급된 사업 성장 5단계 중 뤼튼은 아직 1단계인 ‘도천지장법’이다”라고 했다. 도천지장법은 비전을 세우고, 조직의 체제를 갖추는 단계를 말한다. 생성 AI 업계가 개화하고 있는 만큼, ‘협력자(직원)’을 찾아 흐름에 대비하는 시기라고 했다.
이 대표는 “세상 모든 디바이스의 첫 화면에 뤼튼을 띄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초거대 AI를 속속 접목 중인 포털형 플랫폼들은 잠재적 경쟁사로 내다봤다. 그는 “스마트폰을 켜면 ‘카카오톡’을 열어보는 것처럼, 생성 AI 시대에도 필수 응용 프로그램은 등장할 것”이라며 “국내를 포함해 아직 자국의 초거대 AI가 발달되지 않은 일본 시장 등을 적극 공략하고 생성 AI 응용 프로그램 성공 사례를 쌓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