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급매물을 살 생각이었는데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중 2억원을 돌려주겠다고 해서 고민이에요. 집값도 많이 올랐고요.”
경기 과천의 새 아파트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모씨(38)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재계약을 하면 보증금 중 2억원을 돌려주거나 역월세 8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야 할지, 다시 급매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지역에서 상승 거래(직전보다 높은 가격에 맺은 거래) 비율이 1년 만에 하락 거래를 넘어서는 등 집값이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내 집을 장만하려는 실수요자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전세시장이 약세를 지속해 계속 전세로 살 경우 주거비는 아낄 수 있어서다. 반대로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1년 만에 상승 거래가 하락 앞질러
24일 부동산 플랫폼 업체 직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직전 거래가보다 1% 이상 오른 가격에 계약된 아파트 거래는 총 1016건으로, 전체 거래 건수(2204건)의 46.1%를 차지했다. 집값이 1% 이상 빠진 하락 거래는 871건(39.5%)이었다. 상승 거래 비중이 하락 거래를 웃돈 건 작년 4월 후 처음이다. 상승 거래 비중은 지난해 11월 20%까지 떨어진 이후 5개월째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가격이 5% 이상 상승한 거래 비중도 21.7%나 됐다. 작년 6월 이후 10개월 만에 20% 선을 재돌파했다.
상승 거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송파구(94건)였다. 강동구(91건), 노원구(85건), 성북구(63건), 강남구(56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 매매가는 지난 1월 16억3000만원에서 이달 19억원으로 2억7000만원 뛰었다. 2월 11억원에 거래된 강동구 암사동 힐스테이트 강동 리버뷰 전용 84㎡는 4월 12억8000만원에 손바뀜해 1억8000만원 올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연초 규제 허들이 낮아지고 대출이자 부담도 완화된 뒤 급매물이 소화되면서 호가와 실거래가가 동시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 낮춘 계약 잇따라분위기가 반전된 매매시장과 달리 전세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부동산R114가 이날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달 들어 체결된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 갱신계약 4004건 가운데 1713건(42.8%)이 보증금을 낮춘 ‘감액 계약’이었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 갱신계약 10건 중 4건이 보증금을 낮춘 거래인 셈이다.
감액 갱신으로 집주인이 돌려줘야 할 보증금은 평균 1억원에 달한다. 올 들어 감액 갱신한 수도권 아파트 1만6275건의 평균 갱신보증금은 4억4755만원이었다. 기존 5억4166만원에 비해 9411만원 낮아졌다.
지역별 감액폭은 서울이 1억1803만원(6억9786만원→5억7983만원)으로 가장 컸다. 경기는 8027만원(4억5746만원→3억7719만원), 인천은 7045만원(3억4992만원→2억7947만원)이었다.
서울 강남권과 경기 성남 분당, 하남 등 일부 지역의 대형면적에서는 보증금을 3억원 이상 낮춘 거래도 많았다. 성남 분당구 수내동 ‘파크타운롯데’ 전용 186㎡는 2년 전 전세보증금(14억원)보다 4억5000만원 낮은 9억50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정자동 ‘아이파크분당2’ 전용 145㎡ 전세도 2년 전 14억원에서 최근 2억7000만원 낮춘 11억3000만원에 계약됐다.
전문가들은 금리와 전셋값 등 시장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많은 만큼 섣부른 추격 매수보다 전세 시장에 머무르면서 급매를 노리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전문위원은 “최근 회복세는 일부 지역과 단지의 호가가 끌어올린 측면이 크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는 실수요자라면 하반기에 급매를 노려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심은지/이인혁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