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분기 가계빚이 2002년 통계 작성 후 21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하면서 경기 하강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계빚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금융시스템이 발전하면서 늘어나는 게 일반적인데, 올 1분기엔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사용이 통계 작성 후 처음으로 모두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3일 1분기 가계대출 감소 요인 중 하나로 “연초 지급받은 상여금으로 대출을 상환한 사람이 늘어난 점”을 꼽았다. 여윳돈으로 소비를 늘리는 대신 이자 부담 때문에 대출 상환을 선택한 가계가 많았다는 것이다. 카드 사용이 줄어든 것도 소비 위축 신호로 볼 수 있다.
현장에선 소비 둔화를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농산물 유통 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고금리로 소비 여력이 줄면서 고가 제품부터 매출이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실률이 50%가 넘는 사무실 임대 업체도 있었다.
코로나19 때 소비가 늘어난 업종은 매출이 급감하는 ‘역코로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 인테리어 업체 사장은 “상담 고객 예산이 20% 줄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때가 더 좋았다”는 가구 업체도 많다.
이 같은 현장 분위기는 올 1분기에 민간소비가 전 분기 대비 0.5% 증가하며 경기를 떠받친 것과 다른 것이다. 올 1분기 증가율은 0.3%였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는 “민간소비가 좋다고 하지만 진짜 그런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반도체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민간소비 증가폭의 상당 부분을 내국인이 해외에서 쓴 ‘국외 소비’가 차지한 점도 체감경기가 지표경기보다 나쁜 이유로 꼽힌다. 작년 4분기 가계소비 중 해외 순소비는 전 분기 대비 4263억원 증가한 1조8474억원에 달했다. 이는 가계소비를 0.2%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1분기 지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순관광객 수(해외 여행객-외국인 여행객)가 작년 4분기 173만 명에서 올 1분기 326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걸 감안하면 국외 소비는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분기 민간소비 증가율(0.5%)의 상당 부분이 국외 소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은 지표상 민간소비를 늘리지만 경기 부양에는 한계가 있다. 한은 분석 결과 내국인 해외여행 비용의 70%는 해외에서 소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소비가 늘면 고용 증가로 이어지고 경기에 도움이 되지만 해외에서의 소비는 이런 선순환 효과가 거의 없다.
김현욱 KDI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제의 전반적인 생산 유발 효과 측면에선 국내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긴축 강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분기 가계신용 감소는 코로나19 이후 급격한 유동성 확대가 조정되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창현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2020~2021년 가계신용이 분기 평균 30조원 이상 증가한 걸 감안하면 (지금은) 완만하게 축소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4월 카드 소비액이 1분기 월평균보다 높은 것을 감안하면 판매신용은 2분기에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