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마지막 기회"…'年 30만원' 고통분담 호소한 日 기시다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3-05-22 07:19
수정 2023-05-22 07:26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실현시키려면 적어도 4조8000억엔, 많게는 10조7536억엔의 예산이 필요하다.

육아수당을 대폭 늘리는 부담이 역시 가장 크다. 소득수준에 관계 없이 육아수당을 주는데 1500억엔, 육아수당을 지급하는 연령을 중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 3년 늘리는데 4000억엔이 들 전망이다.



둘째에겐 월 3만엔, 셋째 이후로는 월 6만엔을 주는 다자녀 가구 육아수당을 실현시키는데는 2조엔이 필요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담당 아동수를 낮추는데 3000억엔, 급식비를 무료화하는데 4600억엔이 필요하고, 육아휴직, 단축근무를 사용하는 근로자의 급여를 100% 보조하는데 최대 1조엔이 들 것으로 분석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모두 실현시키려면 최대 8조엔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아이가 셋인 가정에 매월 10만엔 가량을 지급하는 다자녀 가구 육아수당은 초안대로 실현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만한 예산을 마련하려면 일본인들은 얼마씩을 분담해야 할까. 육아수당을 늘리기 위해 예산을 2조엔만 늘리려해도 1인당 연간 사회보험료를 2만1000엔씩 더 걷어야 한다. 기업이 절반을 부담하는 것을 빼면 일본인 1인당 연간 1만500엔, 한국 돈으로 10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4대 보험 가운데 의료보험을 저출산 대책의 재원으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일본인 1인당 의료보험이 연평균 22만7000엔이므로 5% 정도 늘어나는 셈이다.

예산을 5조엔 더 늘리려면 1인당 의료보험료는 1년에 2만6500엔 증가한다. 8조엔을 전부 마련하려면 단순 계산으로 일본인 한 사랑당 4만2000엔의 의료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은 더 고통스럽다. 현재는 사원 급여의 0.36%를 어린이·육아 분담금으로 낸다.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의 예산이 2조엔이라면 분담금 부담률이 1.3%로 현재의 3.6배, 5조엔이라면 2.7%로 7.5배 늘어난다.



수조엔이 필요한 저출산대책 예산을 사회보험료나 기업 분담금 등 한가지 수단 만으로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이 때문에 사회보험료와 기업 분담금을 동시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어느 쪽이든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육아 세대의 부담을 줄여 출산율을 높인다는 저출산 대책이 거꾸로 육아 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사회보험료를 주로 납부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는 현역 세대이기 때문이다.

올해 일본인의 4대 보험료율은 18.7%에 달한다. 소득의 약 5분의 1을 사회보험료로 내는 셈이다. 버블(거품) 경제가 붕괴한 1990년만 해도 10.6%이던 일본의 사회보장 부담률은 30여 년 새 두 배가량으로 뛰었다. 오늘날 부담률은 G7 국가 가운데 프랑스(24.9%) 독일(23.7%)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저축에서 투자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외국인 투자자와 일본 개미 투자가들을 주식시장으로 적극 끌어들이려는 일본의 정책과도 모순된다. 기업에 자본효율성을 높이라면서 분담금 같이 자본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부담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까지의 과정은 배울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기시다 총리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의 초안을 발표하기 2주 전인 3월17일 어린이 정책을 테마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리가 개별 정책을 테마로 기자회견을 여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이대로라면 일본은 사회보장제도와 지역사회의 유지가 어려워진다. 지금부터 6~7년이 저출산을 반전시킬 수 있을 지를 결정하는 '라스트 찬스(마지막 기회)'다"라며 일본 국민들이 저출산 대책을 위해 고통을 분담해 줄 것을 호소했다.

지난 3개월 사이 일본 정부는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한 게 아니다. 육아수당을 늘리려면 얼마, 육아휴직 보조금을 올리려면 얼마 하는 식으로 정책 별로 필요한 예산을 분석하고, 예산 확보 방안과 1인당 추가 부담액을 산출했다.

그리고 총리가 직접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지에 대한 근거가 불투명하다며 연일 전문가와 언론의 포화를 맞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