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親시장' 집권당 총선 압승에도 과반 못넘어…"혼란 우려"

입력 2023-05-22 07:06
수정 2023-06-14 00:02

그리스 집권당인 신민주주의당(ND·신민당)이 21일(현지시간) 열린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단독 집권 연장을 위한 과반 의석에는 미치지 못해 7월 초 2차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투자자들은 그리스 총선 이후 정계의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국채 가격 하락에 베팅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개표가 82% 이상 진행된 상황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현 총리가 이끄는 보수 성향의 신민당은 40.8%를 득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끄는 최대 야당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득표율이 20.1%에 그쳤다. 그리스는 이번 총선을 통해 4년간 의회를 이끌어갈 300명의 의원을 새롭게 선출한다.

그리스 전현직 총리가 격돌한 이번 총선의 여론 조사에서는 그동안 신민당과 시리자의 지지율 격차가 6∼7%포인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개표 결과 두 정당의 격차가 20% 포인트 이상 벌어지면서 신민당의 압승이 확실해졌다.

그리스 정계의 대표적인 '금수저'인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은 대승을 거뒀지만 선거법 개정으로 단독 정부 구성은 어렵게 됐다. 그리스는 1990년 이후 최다 득표한 정당에 50석을 '보너스'로 몰아주는 제도를 도입해 1위 정당이 비교적 쉽게 과반을 확보해 단독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총성에선 이 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그리스 총선에서 과반 의석(151석)을 확보하려면 최소 45%의 득표율을 얻어야 하는 걸로 예측됐는데 이번에 신민당은 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신민당은 145석을 가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신민당은 22일부터 사흘간 연정 구성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거나 이를 포기하고 2차 총선(7월2일 예상)을 치러야 한다. 전문가들은 신민당이 2차 총선을 통해 단독 집권을 연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2차 총선에서는 제1당이 득표율에 따라 20석~50석의 보너스 의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이날 신민당이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 "그리스는 개혁을 믿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는 취약한 정부로는 불가능하다"면서 2차 총선을 시사했다.

신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당분간 정계의 혼란이 예상된다. 총선을 앞두고 금융가에서는 이미 공매도 세력이 나타났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S&P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 분석 결과 투자자들이 그리스 국채 가격 하락에 베팅한 규모가 올해 초 6500만달러에서 지난주 5억달러 이상으로 불어났다고 보도했다. 이는 2014년 이후 최고치다. 그리스 채권은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 그동안 실적이 좋은 편이었다.

한편 신민당을 이끌고 있는 미초타키스 총리는 ‘경제 재도약’을 내걸며 2019년 정권을 되찾았던 인물이다. 그는 1990~1993년 그리스를 이끈 보수파의 거두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전 총리의 아들이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 등 금융계에서 일하다 정치에 입문해 그리스 경제의 극적인 부활을 이끌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친(親)시장 정책을 빠르게 추진해왔다. 그리스는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도 2021년 8.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2022년에도 5.9%의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