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핀은 2차전지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우주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어요. 중국 화웨이가 최근 출시한 폴더블 스마트폰에 열 확산 성능 개선을 위해 그래핀을 적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2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UNIST(울산과학기술원) 저차원탄소혁신소재연구센터 명예소장 겸 석좌교수(사진)는 초박형 2차원 탄소 원자층 그래핀이 실용화 단계에 들어섰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그래핀은 ‘꿈의 물질’로 불린다.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기 때문이다. 육각형 구조 탄소 원자들이 0.2㎚(나노미터·1㎚=10억분의 1m) 수준의 얇은 막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겹으로 쌓으면 흑연, 원통 형태로 말면 탄소나노튜브, 축구공 모양으로 만들면 신약 제조 등에 쓰이는 물질 풀러렌이 된다.
이 소재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그래핀 트랜지스터는 오늘날 쓰이는 실리콘 트랜지스터보다 전자 전달 속도가 훨씬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더 효율적인 컴퓨터의 등장을 앞당길 전망이다. 터치스크린, 태양전지 등을 만드는 데도 적합하다. 플라스틱과 섞으면 열 저항이 늘어나고 단단해진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핀이 매우 훌륭한 재료라는 것은 분명하다”며 “반도체나 2차전지 외에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에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2010년 만 36세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연필심인 흑연에 투명테이프를 붙였다가 떼는 직관적인 방식으로 그래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까지도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그래핀을 발견한 상황에 관해 설명하며 “뇌가 기존 사고 경로를 벗어나 새로운 착상을 하게 하려면 이색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며 “엉뚱해 보이는 방법이라고 생각되더라도 일단 실행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노벨상 수상 직전인 2010년 8월 그래핀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노벨상 수상 이듬해인 2011년 4월 UNIST 명예소장 겸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2016년 9월부터는 UNIST 연구진과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한국의 기초과학연구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UNIST 동료 교수들을 비롯한 한국 과학자들이 거둔 성과를 참고해 연구하는 과학자가 적지 않다”며 “아직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진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연구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조만간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와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조언에 대해 질문하자 비슷한 맥락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누구의 조언도 듣지 말라는 것이 내 조언”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 마음을 좇다 보면 원하는 것을 얻거나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