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기술력을 뽑낸 미국 스타트업들이 국방부와의 무기 도입계약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군납 비리 등을 의식해 보수적이었던 국방부도 최근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외부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정규전에서도 저렴한 장비로 위력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입증됐음에도 미국이 여전히 중동과 아프리카 테러 단체 등을 상대로도 대형 무인기를 동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시간) "군수 장비 스타트업들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테스트를 마치고 국방부와의 계약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기부하거나 국방부가 구매한 스타트업의 첨단기술 장비를 전달받은 우크라이나 군은 전장에서 이를 활용해 뛰어난 성과를 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엔지니어가 창업한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카펠라 스페이스는 기존 광학 위성이 무용지물이 되는 야간의 구름 아래에서도 적을 추적할 수 있는 작고 저렴한 위성을 제작했다. 기존에는 국방부가 수 십억달러를 주고 상업용 위성 운용사를 통해 사진을 얻어왔으나 야간이나 악천후시 사용하기 어려웠다.
유타주(州)의 포텀 테크놀러지는 적의 드론을 무력화시키는 무인항공기를 제작했다. 포텀의 드론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운용하는 이란제 무인 공격기를 요격하면서 '샤헤드 헌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격용 드론의 경우에도 기존에 미군이 사용하던 리퍼와 프레데터 등 대 당 5700만 달러의 대형 무인기에 비해 훨씬 싸고 저렴한 스타트업의 제품이 대거 투입됐다. 러시아군의 통신을 감청한 뒤 AI로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든 샌프란시스코의 프리머 테크놀러지도 우크라이나 군에 큰 도움을 줬다.
미 국방부 혁신팀은 수 년이 걸리는 기존 무기 조달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초보 조종사도 장애물을 피해 건물 내부 등을 비행할 수 있도록 만든 인공지능(AI)드론 구매를 승인했다.
다만 실전에서 제품 테스트를 마쳤음에도 국방부의 느린 의사 결정 때문에 계약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도 적지 않다고 NYT는 지적했다. 스타트업이 수익을 낼 수 있을 정도 수량의 계약을 따내려면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파임 바나자데 카펠라 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는 "국방부 구매 담당자들은 '노'라고 말하는 훈련만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윌 로퍼 전 미국 공군 조달책임자는 "국방부는 민간 기업으로부터 신기술을 구매하는 대신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집하고 있다"며 "민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협력 모드로 전환해야 할 시기에 여전히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